눈물 대신 선물과 평등 담은 핀란드 베이비박스

[지구촌 육아전쟁 탐방기 핀란드편]
80년전 영아 사망률 낮추려 베이비박스 도입
소득구분 없이 모든 출산가정에 일괄 지급해
"핀란드 아동들의 평등한 시작 상징으로 변화"
  • 등록 2018-01-08 오전 6:30:00

    수정 2018-01-08 오전 6:30:00

켈라(Kela·사회보험관리공단)가 공개한 2017년 핀란드 베이비박스 구성 물품들. (사진=켈라 홈페이지)
[헬싱키(핀란드)=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한국과 일본에서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맡길 수 있게 제작한 상자를 ‘베이비박스’라고 부른다. 핀란드에도 ‘베이비박스’가 있지만, 용도는 전혀 다르다. 핀란드 베이비박스는 출산을 앞둔 부모들과 태어날 아기들을 위해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육아용품 상자(Maternity package)를 지칭한다.

올가 가슨(Olga Gassen) 켈라 모성패키지 부문 수석 고문. (사진=김보영 기자)
영아 사망률 낮추려 베이비박스 도입

핀란드 베이비박스의 역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 초 핀란드는 영아 사망률이 1000명 당 65명에 달했다. 러시아 식민지를 벗어나자 시작된 내전 탓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영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환경을 위생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판단아래 1938년 베이비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80년이 지난 지금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육아지원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육아지원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산하기관인 켈라(Kela·사회보험관리공단)를 방문해 베이비박스 제작과정을 직접 살펴봤다.

육아용품을 담는 박스는 아기자기한 동물 문양이 그려진 튼튼한 마분지로 제작됐다. 내부는 부드러운 솜과 매트리스로 채워져 있어 아기 침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상자는 아기옷과 방한복, 단열 부츠, 양말, 수건, 기저귀, 체온계, 동화책 등 육아용품 40여가지로 채워진다.

1948년까지는 무주택·저소득층 가정에만 베이비박스를 지원하다 1949년부터 전 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베이비박스 대신 출산수당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첫아이를 출산한 여성의 95%가 베이비박스를 선택한다.

3세·5세 딸을 육아 중인 워킹맘 한나 테스키넨씨는 “출산수당은 200유로(원화 약 25만원) 정도인데 베이비박스에 들어있는 용품을 돈주고 사려면 약 400유로(원화 약 45만원)가 든다”며 “게다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전통이어서 첫 출산을 앞둔 핀란드 여성은 베이비박스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2015년 제작된 핀란드 베이비박스 구성. 방한복과 동화책, 양말, 체온계, 기저귀 등 육아용품 40여가지로 구성돼 있다. 외관은 마분지로 제작했고 박스 하단에 매트릭스와 솜이 깔려 있어 침대로도 사용 가능하다. (사진=김보영 기자)
베이비박스 새 디자인 공개 국가적 행사

베이비박스의 구성 제품과 디자인은 2년마다 바뀐다. 핀란드 자국 기업들은 물론 EU 국가 내에서 활동 중인 디자인·육아용품 회사 수십곳이 베이비박스를 디자인하고 베이비박스를 채울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켈라에서 베이비박스 업무를 총괄하는 올가 가슨(Olga Gassen) 수석 고문은 “모든 아동들이 동등한 디자인의 베이비박스를 지급받기 때문에 의류와 신발 등을 노란색, 연두색 등 최대한 성별에 따른 편견을 없앤 성중립적 색깔로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며 “다음 베이비박스를 디자인할 시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반영하고자 홈페이지, 전화, 방문 상담 등을 통해 수시로 건의 사항을 접수한다. 정식 디자인은 격년마다 바뀌지만 그 때 그 때 의견을 받아 조금씩 구성 제품을 수정, 보완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2018년은 베이비박스가 처음 등장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베이비박스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부모의 지위와 관계 없이 모든 아동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됐다.

올가 가슨 수석고문은 “가난한 아동들의 생명을 지키려 저소득층 가정에만 지급한 것이 베이비박스의 시작이었지만, 수십년이 흐른 지금은 모든 핀란드 아동들의 평등한 시작을 위한 필수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빈부의 차이를 경험한다. 어떤 아이들은 하루 이용료만 수십만~수백만원에 달하는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삶을 시작합니다. 반면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철제 베이비박스에 담겨 남의 손에 넘겨지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핀란드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누리는 교육, 복지 등 제도적 혜택은 전부 평등하다.

핀란드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인 엄마 김윤정(36)씨는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베이비박스를 받고 동등한 교육을 받는다. 친구 부모가 자신의 부모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도 아이들은 빈부의 차이를 느낄 기회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