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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베이비박스의 역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 초 핀란드는 영아 사망률이 1000명 당 65명에 달했다. 러시아 식민지를 벗어나자 시작된 내전 탓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영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환경을 위생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판단아래 1938년 베이비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80년이 지난 지금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육아지원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육아지원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산하기관인 켈라(Kela·사회보험관리공단)를 방문해 베이비박스 제작과정을 직접 살펴봤다.
육아용품을 담는 박스는 아기자기한 동물 문양이 그려진 튼튼한 마분지로 제작됐다. 내부는 부드러운 솜과 매트리스로 채워져 있어 아기 침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상자는 아기옷과 방한복, 단열 부츠, 양말, 수건, 기저귀, 체온계, 동화책 등 육아용품 40여가지로 채워진다.
1948년까지는 무주택·저소득층 가정에만 베이비박스를 지원하다 1949년부터 전 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3세·5세 딸을 육아 중인 워킹맘 한나 테스키넨씨는 “출산수당은 200유로(원화 약 25만원) 정도인데 베이비박스에 들어있는 용품을 돈주고 사려면 약 400유로(원화 약 45만원)가 든다”며 “게다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전통이어서 첫 출산을 앞둔 핀란드 여성은 베이비박스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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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의 구성 제품과 디자인은 2년마다 바뀐다. 핀란드 자국 기업들은 물론 EU 국가 내에서 활동 중인 디자인·육아용품 회사 수십곳이 베이비박스를 디자인하고 베이비박스를 채울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켈라에서 베이비박스 업무를 총괄하는 올가 가슨(Olga Gassen) 수석 고문은 “모든 아동들이 동등한 디자인의 베이비박스를 지급받기 때문에 의류와 신발 등을 노란색, 연두색 등 최대한 성별에 따른 편견을 없앤 성중립적 색깔로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며 “다음 베이비박스를 디자인할 시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반영하고자 홈페이지, 전화, 방문 상담 등을 통해 수시로 건의 사항을 접수한다. 정식 디자인은 격년마다 바뀌지만 그 때 그 때 의견을 받아 조금씩 구성 제품을 수정, 보완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2018년은 베이비박스가 처음 등장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베이비박스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부모의 지위와 관계 없이 모든 아동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됐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빈부의 차이를 경험한다. 어떤 아이들은 하루 이용료만 수십만~수백만원에 달하는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삶을 시작합니다. 반면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철제 베이비박스에 담겨 남의 손에 넘겨지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핀란드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누리는 교육, 복지 등 제도적 혜택은 전부 평등하다.
핀란드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인 엄마 김윤정(36)씨는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베이비박스를 받고 동등한 교육을 받는다. 친구 부모가 자신의 부모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도 아이들은 빈부의 차이를 느낄 기회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