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이후 약 50년간 물가가 오르는 것만 봤기 때문에 디플레가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산업혁명 이후에는 인플레 기간보다 디플레 기간이 더 길었다. 산업혁명이 기계가 수작업을 대체하는 과정이므로 물건의 생산이 늘어나 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디플레는 1930년 대공황이다. 1920년대에 풍요를 누렸던 미국 경제가 과잉생산구조가 되면서 디플레가 발생했는데 경기 침체가 장기간 이어졌다. 최근 사례로는 일본이 있다. 2000년대 들어 디플레가 본격화됐는데 돈의 가치 상승으로 자산 가격이 하락했고 그 여파가 10년 이상 지속됐다.
디플레 기간에 사람들은 자기 자산을 어떻게 움직일까?
일본의 사례를 보면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현금이나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비중이 늘었다. 2000년 이후 12년 동안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 흐름을 보면 현금과 예금이 전체 금융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4.2%에서 55%로 늘어났다. 초단기 상품 금리가 0.02%에 불과했지만 돈이 저축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금리가 0%라 해도 물가가 하락하면 실질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이동하기보다 현금으로 남아 있었다.
둘째, 해외 상품의 비중이 늘었다. 금리가 너무 낮아 더 이상 국내 채권에 투자하기 힘들어지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채권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환 헤지 비용을 제외하고도 일본채권보다 1~2%p 높은 수익이 발생하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2000년에서 2006년 사이 국내 주식형 펀드가 10% 늘어나는 동안 해외 채권과 하이브리드 채권은 10배 이상 늘어났다.
일본은 특이한 경우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일본처럼 갑자기 어려움에 빠진 경우는 흔치 않다. 향후 우리나라 경제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일본보다 성장이 지속적으로 둔화한 유럽이 더 맞을지 모른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디플레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투자하느냐 하는 행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 경제는 디플레 환경에 서 있다. 2007년에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갔을 때에도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지 않은 걸 보면 디플레 영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중국처럼 6%대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나라조차 생산자물가 하락을 겪고 있다. 우리 경제가 디플레에 들어갔는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징후가 있지만 아직 뚜렷하지 않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8월 물가 하락에는 여러 특수 요인이 들어가 있고 하락 폭도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전한 건 아니다. 세계 경제가 조금만 나빠지면 디플레에 휩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므로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