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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경북 구미) 18년에서 전두환(경남 합천) 7년까지. 87년 민주화 이후 5년 단임제 하에서도 영남 대통령의 시대는 계속됩니다. 87년 대선 노태우(대구), 92년 대선 김영삼(경남 거제), 2002년 대선 노무현(경남 김해), 2007년 대선 이명박(경북 포항), 2012년 대선 박근혜(대구)까지 역대 대선의 승자는 대부분 영남 출신입니다. 대통령 출신지역만 보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영남공화국입니다.
영남 대통령 유일한 예외 김대중…충청 출신 이회창 97년·2002년 패배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바로 김대중입니다. 97년 대선 승리는 기적입니다. 물론 정치인 김대중의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탁월한 지적 능력, 대중을 사로잡는 언변과 유머감각, 시대를 내다보는 혜안, 앞서가지 않고 대중과 보조를 맞추는 현실 감각 등등. 대통령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는 97년 대선승리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은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이인제의 독자출마에 따른 영남표의 분열이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김대중의 97년 대선 라이벌인 이회창이 영남 출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회창의 고향은 충남 예산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고향은 황해도 서흥). 만일 이회창이 영남 출신이었다면 이인제의 독자출마에 따른 영남표 분산의 효과도 적었을 것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비영남 보수후보였던 이회창은 2002년 대선에서 또 패배합니다. 대선승리의 영광은 영남 출신인 노무현이 가져갔습니다.
주요 정당 유력 주자 모두 영남 출신…5.9 장미대선 승자도 영남 대통령
다시 말해 87년 대선 이후 보수진영이 영남 출신을 대선후보로 내세웠을 경우 패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두 번의 예외는 97년과 2002년 대선입니다. 묘하게도 그 때는 충청 출신의 이회창이 보수진영의 대선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묘한 것은 주요 정당의 대선 경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은 유력 대선후보들은 하나같이 영남 출신입니다. 민주당 문재인(경남 거제) 자유한국당 홍준표(경남 창녕) 국민의당 안철수(부산) 바른정당 유승민(대구) 등 모두 영남입니다. 정의당 심상정(경기 파주)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5월 9일 장미대선의 승자 역시 영남 출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대선 승리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단 한 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영남 지역구 국회의원은 호남의 두 배 정도입니다. 이는 영남 인구가 두 배 가량 많다는 의미입니다. 지역주의 투표 성향으로 영호남 지역에서 각각 특정후보를 향한 몰표가 이어진다고 전제하면 대선이라는 마라톤에서 영남 후보는 호남 후보보다 항상 5km 정도 앞서서 출발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군, B군, C군, D군 등 농촌지역 4개군이 하나로 묶인 국회의원 선거구에서는 대체적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군 출신 후보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대선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김대중의 4자필승론, 유시민의 게임의법칙 폐기 수준의 압도적 환경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의 ‘4자 필승론’이라는 게 게 있습니다. 이른바 1노3김 구도에서 김영삼·김대중 후보단일화 없이도 4자구도에서 김대중이 승리할 수 있다는 이론적 기반입니다. 노태우(경북) 김영삼(경남) 김대중(호남) 김종필(충청)의 지역기반을 인정하더라도 김대중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승리하면 대통령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김대중은 서울에서만 1위를 기록했을 뿐 인천과 경기에서는 노태우, 김영삼에 이어 3위를 기록했습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유시민은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비호남 유권자들의 반(反)김대중 정서를 전제로 김대중이 대선에 나서면 92년 대선의 개정판이 되고 김대중이 아닌 자격을 갖춘 제3의 후보를 내세운다면 승부를 미리 알 수 없는 선거판이 될 것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쉽게 말해 DJ가 또 대선에 나선다면 DJP연대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에 진다는 뜻입니다. 제3의 후보를 내세우는 게 오히려 정권교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의미입니다. 책이 나온 시점이 97년 4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시민은 IMF 사태와 이인제의 독자출마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과연 IMF 사태와 이인제의 독자출마 없이 김대중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은 여전히 의문입니다.
문재인, 영남 패권의 부산대통령 vs 지역주의 해소 첫 대통령
50% 안팎을 넘나드는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30%대 중후반으로 대세론을 구가하는 문재인의 차기 지지율,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전망 등을 고려할 때 차기 대선에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 있는 사람은 문재인입니다.
만일 특정지역과 특정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만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면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은 부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권 이후 지지층을 고려하다 보면 전직 대통령들이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정권이 국민통합을 내세우고도 영남편중 또는 호남편중 인사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재인의 반대자들이 우려하는 대로 친노·친문·영남 패권주의가 현실화되면 그의 통치 역시 실패할 수 있습니다. 부산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매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문재인은 △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 △본인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울산·경남(PK) △라이벌 안희정의 텃밭인 충남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경북(TK) △역대 대선 최대 승부처인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세대별 지지율 역시 40대 이하는 압도적입니다.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50대와 60대 이상에서도 안희정과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문재인은 특정지역과 세대만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전국 모든 지역과 모든 연령대에서 1위 득표를 기록하는, 87년 이후 사상 첫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호남 기반의 영남 대통령이었던 참여정부와는 질적으로 다른 출발선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노무현의 말대로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환경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바로 지역주의 해소의 첫걸음입니다. 그래야만 ‘호남 출신 대통령 불가론’과 같은 말도 안되는 정치적 담론도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