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민 기자] ‘전고체(全固體)’ 배터리(이차전지)는 말 그대로 모든 게 고체화돼 있다는 전지를 뜻합니다. 전고체 배터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 구조부터 알아야 합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크게 4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돼 있습니다.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입니다. 이중 양극재와 음극재는 배터리의 기본 성능을 결정짓는 구성요소로 각각 리튬산화물(LiMOx)과 탄소계(흑연)를 쓰고 있습니다. 전해질과 분리막은 배터리를 안정성을 구현하는 요소로서 전해질에는 리튬염을 넣은 액체 유기용매, 분리막에는 합성수지를 씁니다. 이런 구조에서 배터리 내부 리튬이온(Li+)과 전자(e-)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양극으로 돌아갈 때 전류를 방출하면서 전기를 발생시킵니다.
전해질은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갈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이때 양·음극이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벽’ 역할의 분리막을 전해질 사이에 세웁니다. 양극과 음극이 분리되지 않은 채 전류가 흐르면 과전류로 열이 발생해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액체 전해질의 경우 가볍고 이온전도도가 높지만, 급격한 온도변화나 강한 내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해 전해액 누액이 발생하면 발화나 폭발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큽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처럼 화재 위험이 있는 액체 형태의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것을 말합니다. 배터리 내 이온이 오가는 통로인 전해질을 고체를 사용하면 유기 용매가 없으므로 이론적으로 불이 붙지 않아 안전성이 향상됩니다. 이러한 특성에 전고체 배터리의 최대 장점으로 ‘안정성’을 가장 먼저 꼽습니다.
우선 화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기존보다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힘 좋고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터리 용량과 출력을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전고체 전해질과 함께 양·음극재(리튬산화물, 흑연계) 소재 개선으로 에너지 밀도도 더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전해질 하나만 고체로 바꿨다고 성능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양극과 음극재도 업그레이드해 배터리 성능과 수명, 충전시간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배터리에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역할을 하는 음극재 역시 성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양극재에서 많은 에너지(리튬이온)를 만들어내더라도 이를 저장하는 역할인 음극재의 용량이 받쳐주지 못하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현재 음극재에 주로 쓰이는 소재는 천연·인조 흑연인데, 전고체 배터리에서는 리튬메탈을 사용할 수 있어 에너지 저장 용량을 높이면서 충전속도까지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됩니다. 즉, 전고체 배터리는 이처럼 배터리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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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체 배터리는 그 구성도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구성하는 4대 핵심 소재(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로 이뤄진 기본 단위를 ‘셀’(Cell)이라고 합니다. 셀은 쉽게 말해 가장 작은 형태의 배터리라 보면 됩니다. 전기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셀을 외부 충격이나 열, 진동 등에서 보호하기 위해 프레임에 넣고 모듈(module)로 만듭니다. 모듈 여러 개를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비롯한 각종 제어·보호시스템을 장착한 팩(pack)으로 완성합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이처럼 셀에서 모듈 단위를 거쳐 최종적으로 팩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셀 내부적으로도 구성이 달라집니다. 고체 전해질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물리적으로 막고 있기에 양·음극을 갈라놨던 분리막도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죠. 이 자리에 더 많은 양·음극 활물질(배터리 내 전기를 일으키는 반응을 담당하는 물질)을 채워넣음으로써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 전기차는 1회 충전에 500~600km를 주행하는데 전고체 배터리는 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1000km까지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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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꿈의 배터리인 전고체 전지가 상용화되기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온의 이동성이다. 전해질은 이온전도도가 높을수록 좋은데, 전도도는 당연히 고체보다 액체가 높습니다. 이온이 얼마나 잘 돌아다니느냐 하는 문제는 배터리의 충·방전과 출력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입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고체 안에서 이온 이동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소출력 소형전지 정도에나 쓸 수 있는 수준입니다.
또 전고체 전해질 후보군은 황화물계와 산화물계, 고분자계 등 크게 3가지로 보는데 이 중에서 황화물계의 상용화가 가장 빨리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황화물계는 3개 후보군 중에서 이온 전도도가 가장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고분자계는 이온 전도도가 낮고, 산화물계는 무겁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상용화에 뒤쳐지고 있습니다. 다만 황화물계는 수분에 취약하다는 게 최대 단점이어서 이를 극복해야 양산이 가능합니다. 황화물계는 수분과 반응해서 황화수소 가스 생성되는 문제가 있어 내수분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울러 기존의 습식 공정으로는 제조하기 어려워 건식공정 개발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