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이 고백한 부끄러운 한국사 3가지 장면은?

신작 장편 '공터에서' 발간
한국 현대사 버티어 낸 평범한 사람들의 삶 그려
기자간담회 중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털어놔
  • 등록 2017-02-09 오전 2:31:33

    수정 2017-02-09 오전 2:31:33

소설가 김훈(사진=해냄출판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소설가 김훈(69)이 6년 만에 신작 장편 ‘공터에서’(해냄)를 펴냈다. 김훈은 자신의 아버지와 본인이 겪었던 굴곡 많은 현대사를 바탕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근근이 일상을 버티어 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냈다.

이런 이유로 김훈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간담회에서 다른 작품의 발간 때보다 속에 있던 말을 많이 꺼내놨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해방, 좌우분열, 한국전쟁과 분단, 군부독재, 경제발전 등의 과정에서 겪은 우리 역사의 부끄러웠던 자화상을 고백하며 깊은 회한에 빠지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를 꼽았다.

◇“신념을 가진 언론인 없었다”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김훈은 대학을 중퇴하고 1975년 일간지 기자로 입사한다. 박정희 정권의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언론 자유를 탄압했다. 기사를 검열했고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붙잡아 갔다. 1979년 10월 박 대통령이 서거한 뒤 1980년 ‘서울의 봄’이 왔다. 그러나 전두환 등 신군부의 쿠데타로 또다시 군부독재가 연장됐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사를 통폐합하며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여기에 회유책도 같이 내놨다. 언론은 스스로 군부독재에 부역했다. 신군부 찬양하는 기사를 실었고 ‘땡전 뉴스’를 내보냈다. 언론은 전두환 정권의 쿠데타와 독재에 침묵했다.

김훈은 이날 간담회에서 80년대 자신이 겪은 이야기는 소설로 쓰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훈은 2001년 ‘칼의 노래’를 발표하며 일약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로 필명을 날린다. 그러나 김훈은 소설가로 전업하기 전 “전두환 찬양기사는 내가 다 썼다”며 1980년대 자신의 행적을 고백해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김훈은 “1980년. 내가 1974년에 입사해 1년 수습하고 5년 반 차 기자였다. 그때 나를 지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일을 써야되나.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그것을 소설로 쓰는 것보다 그 시대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다 모여서 왜 그렇게 됐는지 이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 시대 언론이 부역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회상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아마 짐작하기에 그 시대에 언론들이 역사라는 것은 그 민주적인 법칙에 따라서 전개되고 진화한다는 확신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런 신념이 없었다. 그런 신념을 가진 언론인도 있었겠지만 분명히 없었고 압도적인 사회 전체적인 공포 분위기에 짓밟혀 있었다.”

◇“남학생은 거리에서 소변을 봤고 여학생은 참으라 했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촛불집회와 태극집회가 반목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김훈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훈은 “조카들이 촛불집회에 나가자고 했을 때 감기가 걸렸다고 하고 안 갔다. 친구들이 태극기 집회 나가자고 했을 때도 감기 걸렸다고 하고 안 나갔다. 대신 연말에 관찰자 입장에서 두 번쯤 가서 양쪽을 다 기웃거렸다. 해방 후 70년이 지났는데 엔진이 공회전한 거 같다는 느낌 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학창시절 경험을 털어놨다. 서울 출생인 김훈은 중고등학교를 서울 도심에서 다녔다. 김훈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 학생들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송했다”며“지금 시위를 하는 그 거리다. 그때 태극기 들고 교통 통제한 그 길에 반나절을 기다렸다. 남학생들은 가로수에 소변을 봤고 여학생들은 그저 참으라는 말만 들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태극기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내가 정말 너무 오래 사는 거 아닌가,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애가 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관대작들 피난민 가로질러 질주했다“

‘공터에서’의 시대적 배경은 1920년대부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때 까지다. 김훈은 시대의 면면을 묘사하기 위해 신문 사회면을 많이 참고했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김훈은 “신문을 보며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의 유구한 전통은 갑질 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며 “한국전쟁 때도 피난민들은 줄지어 부산까지 걸어가는데 우리나라 고관대작들이 군용차와 관용차를 징발해 응접세트와 피아노를 싣고 피난민 사이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질주해갔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런 갑질이 지금까지도 악의 유산으로 계속되고 있다”며 “제가 태어난 조국이 ‘이런 나라였구나. 이런 나라의 후예였구나, 이런 나라에서 글 쓰고 있구나’싶어 슬펐다. 전쟁 때 보여준 비리와 야만성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을까? 김훈은 희망에 대해 묻자 다소 길게 답했다.

”제가 이번 소설에서 말할 수 있는 희망이란 것은 아주 사소한 것. 갓난애가 태어나는 거 특히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여성의 생명이 태어난 것은 놀랍고 신비스러운 것이다. 여성은 또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까. 써놓고 보니 그런 것들이 희망이라고 한 게 한심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면 또 뭐가 희망인가? 이념이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참 자신이 없는 부분이었다. 희망이라는 것도 결국 생활 위에다가 건설할 수밖에 없다. 갑질을 쳐부수는 것들. 이런 게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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