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역외보조금 규제 법안(FSR)이 지난달 28일 유럽 이사회 승인을 받으면서 국내 기업은 물론 정부도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다. 법안 자체에 ‘불확실성’이 짙다는 측면에서다. 이를테면 기업 결합시 국내서 받은 보조금이 EU 경쟁당국 심사 후 불법 판결이 나면 조건부 승인이나 최악의 경우 기업결합 자체가 금지된다. 정부의 새 먹거리 사업인 원자력발전(원전) 수출길 역시 험로가 예상되지만 법 시행 3년 후 가이드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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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法…가이드라인은 3년 후에나
7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EU 이사회가 역외보조금 규정을 승인하기 전인 올해 2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5개국 사업자단체와 빅테크 단체는 해당 법안에 대한 우려 사항을 담은 공동 성명서를 냈지만 결국 최종 법안은 일부 반영되는 선에서 그쳤다.
공동 성명서는 △보조금 정의, 경쟁왜곡 개념 등 핵심 개념이 불확실한 점 △신고기업이 스스로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자료까지 제출해야 하는 등 행정부담이 큰 점 △직권조사 대상이 불분명하고 조사 시효가 10년으로 지나치게 긴 점 △공공조달 관련 조사기간이 최대 200일까지 소요될 수 있어 조달절차가 크게 지연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법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경쟁을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큰 보조금으로는 기업결합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거나 공공조달에서 과도하게 유리한 입찰을 가능하게 하는 보조금 등이다.
예컨대 EU 내에서 매출액이 5억 유로 이상의 한국 A기업이 EU의 B기업을 인수할 때 A기업이 한국서 기업결합을 위한 자금지원을 받았다면 불법성이 짙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조건부 승인이나 기업결합 금지라는 시정조치 명령을 받게 된다.
원전 수출도 마찬가지다. 한국수력원자력발전소(한수원)은 폴란드에 이어 체코 등 유럽 지역에서 원전 수주전을 잇고 있는데 내년 3분기부터는 공공조달에는 FSR이 적용된다. 법에는 공공조달 입찰 때 조달 가액이 2억5000만 유로 이상인 경우 참여기업은 최근 3년간 보조금 수혜내역을 계약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다만 민간사업인 경우엔 FSR을 피할 수 있다. 제재 조항이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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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주도 공공조달땐 ‘보조금’ 살펴야
앞서 한수원의 폴란드 원전 수주 입찰과 관련해 출혈 입찰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폴란드의 싱크탱크인 ‘폴리티카 인사이트’와 다수의 현지 언론보도는 한수원이 프랑스, 미국 등의 경쟁업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입찰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출혈 입찰’이라고 비판하고 수출입은행 등 공공기관들의 금융지원 비용 부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역외보조금 규정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지만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대응할 방침이다”라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은 내년 3분기 법이 시행된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3년 후 나오는 것이어서 공공조달에 참여하기 위해선 사전에 보조금 내역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EU의 역외보조금 규정은 역내 보조금 기준을 역외 적용한다는 것인데 통상 질서와 어긋나 보인다”며 “법제화한만큼 우리 기업으로선 내년 3분기 법 시행 전 대비태세를 갖춰야 하고 일반적으로 보조금을 받았던 대형 M&A나 공공조달의 경우에는 좀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