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못가는 질본 연차수당 깎아 재난지원금 마련한 기재부

나라살림연구소, 2차 추경 공직자 인건비 분석
질본·의료원 연가보상비 대폭 감소…청와대·국회 등은 제외
“삭감 기준 불명확…방역 최전선 공무원 사기 꺾지 말아야”
기재부 “예산지침 변경해 전 국가공무원 보상비 집행 제한”
  • 등록 2020-04-22 오전 12:00:00

    수정 2020-04-22 오전 7:18:05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기획재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재원 조달을 위해 질병관리본부와 국립병원 등 코로나19로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청와대나 국회 등 소위 ‘힘 쎈’ 일부 부처 공직자는 삭감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재부는 뒤늦게 예산지침을 바꿔 삭감 대상에서 제외했던 부처도 연가보상비가 집행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긴급재난지원금 마련 위해 질본·의료원 보상비 깎아

21일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2차 추경안에서 공직자 연가보상비를 삭감해 소득하위 70%에게 100만원씩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코로나19로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보상비가 대폭 축소됐다.

특히 방역 최일선에 서 있는 질본과 지방국립의료원의 연가보상비 삭감폭이 가장 컸다. 질본은 7억600만원 삭감됐고 이어 △국립나주병원 1억3300만원 △국립마산병원 8000만원 △국립목포병원 6200만원 △오송생명과학단지지원센터 2200만원 순이다.

이밖에 현재 코로나 방역업무 지원에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국방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환경부 등의 연가보상비도 삭감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회 소속 공직자의 연가보상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또 국무조정실과 인사혁신처,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통일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헌법재판소 등도 연가보상비 예산이 유지됐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 대응으로 휴가를 내지 못하는 공직자가 연보상비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결국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격무에 시달리는 공직자는 피해를 보고 상대적으로 휴가가 가능한 직군 공직자는 피해를 보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처별로 연가보상비를 삭감하느냐, 삭감하지 않느냐도 일관되지 않은 자의적 기준으로 정했다”이라며 “심지어 코로나19에서의 역할이나 대응 강도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적자국채 발행을 하지 않는다는 목표도 정치적 이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하거나 비효율적 지출을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출 시기만을 조절하거나 재정 건전성과는 상관없는 기금거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부는 F-35전투기 도입이나 해상작전헬기 구매 지출 금액만 각각 2900억원과 1700억원 지출을 줄이고 그만큼 국채 발행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도입 자체를 취소하는 대신 대금 지급 시점만 조정했다. 결국 언젠가는 다시 쓸 돈이라는 얘기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정부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목표만을 달성하고자 재정 건전성과 전혀 상관없는 지출 삭감을 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질본이나 지방국립병원의 연가보상비 같은 인건비를 깎아 코로나19 대응에 최전선에서 가장 애쓰는 공직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지침 바꿔 모든 부처 보상비 집행 않겠다”

추경안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이같은 지적에 제기되자 뒤늦게 2차 추경안에서 연가보상비 삭감대상에서 제외했던 부처도 예산지침을 변경해 전체 국가공무원의 연가보상비를 집행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추경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한 국회 심사와 통과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고려해 연가보상비 감액 부처를 최소화했다”며 “인건비 규모가 크고 다른 재정사업이 추경안에 포함된 20개 중앙행정기관의 연가보상비만 감액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추경에 반영되지 않은 나머지 34개 기관의 연가보상비는 국회 통과 즉시 예산집행지침 변경을 통해 실제 집행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나라살림연구소측은 이같은 기재부 설명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연가보상비 규모가 3억원에 불과하고 다른 재정사업이 없는 금융위원회 연가보상비도 삭감대상에 포함하는 등 명확한 기준 없이 편의대로 삭감대상 부처를 정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회의 예산심의와 상관없이 예산 지침을 변경해 연가보상비 지급을 막은 것은 행정부가 임의로 예산 집행 내역을 조절한다는 점에서 국회의 예산심의를 무력화하는 나쁜 선례라고 비난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연가보상비를 삭감하기 위해서 54개 기관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소홀히 해 인건비 비중이 큰 기관인 보건복지부 등부터 삭감하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며 “이번 2차 추경안에서 제외됐던 34개 기관의 연가보상비를 불용처리해도 이를 다시 전용하려면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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