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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3년째 같은 역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번 다르게 하려고 연구한다”(아누팜). “큰 무대에 선 뒤에야 알겠더라.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관객에겐 필요하다.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극복 중이다”(김범진).
여기 이색(異色) 배우 ‘둘’이 있다. 3년째 외국인노동자 연기만 해왔다는 인도출신의 아누팜(28·ANUPAM TRIPATHI)과 130㎝, 45㎏의 단신배우 김범진(25) 이야기다. 두 배우는 “일반 배우들과는 외형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잃는 것도 있지만 기회를 얻기도 한다”면서 “다름의 시선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때로는 ‘OK’보다 ‘NG’ 장면이 더 큰 웃음을 주듯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대찬 배우들이다. 두 사람을 최근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났다. 둘의 생애 첫 인터뷰란다.
인도에서 온 아누팜…“다작 하지만 배우는 단계”
아누팜은 최근 폐막한 제36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연극 ‘불량청년’에서 마자르 역을 맡아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폭탄전문가로 외국인이지만 한국 독립을 돕는 조력자로 관객의 큰 웃음을 자아냈다. 아누팜은 “연극 ‘어느 가족의 역사’에서 만난 지춘성 선생의 인연으로 이 작품에도 출연했다”며 “한국에 왔을 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교수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국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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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팜은 “영화 ‘국제시장’,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 ‘호구의 사랑’, 연극 ‘사보이 사우나’ 등에 출연한 나름의 다작배우”라며 “지금은 영화 ‘더폰’을 찍고 있다. 역시 액스트라”라고 소개하며 크게 웃었다.
130㎝ 김범진…대형무대 데뷔 “나는 행운아”
김범진은 지난달 막을 내린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멀티역으로 관객에 큰 박수를 받았다. 극 중 악당 ‘볼트’와 ‘까마귀’ 외 여러 배역으로 등장하는데 여주인공 ‘마리나’를 겁탈하려다 정작 그녀에게 교화되고 마는 2%로 부족한 악당 같지 않은 악당 역으로 웃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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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 역시 ‘페라클레스’를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는 자체가 신기했고 과정도 즐거웠다. 특히 연기적 호흡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배역이기도 했다. 관객도 많으니까 진짜 살맛이 났다고 할까. 커튼콜 때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벅찼다. 아, 이래서 배우를 하는구나를 또 한 번 느꼈다. 배우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판에 박힌 이미지 고민…하지만 도전해볼만
두 배우의 공통된 고민은 이미지의 한계다. 너무 판에 박힌 연기만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고 했다. 아누팜은 “외국사람이기 때문에 언어도 그렇고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면서도 “다만 예전에는 기다리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힘들지 않다. 여유가 생겼다.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범진은 “어렸을 때부터 끼가 많았다. 수학여행 장기자랑에 서는 것도 좋아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고 보니 관객이 나를 신기해하고 또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오는 단단하다. “이것 역시 내 과제라는 것을 안다. 힘들 거다. 하지만 이겨낼 거다. 관객이 내가 아닌 캐릭터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두 배우의 꿈은 뭘까. 장난기 많은 청년 아누팜의 대답이 쏟아졌다. “노동자 역할 좀 그만하고 멜로연기를 꼭 하고 싶다.” 김범진은 “갱 역할로 할리우드행이 목표다. 꿈은 크게 잡는 거 아닌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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