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미안해요, 현준씨의 마음은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동안 저에게 신경 써줘서 감사했지만, 저희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윤정의 완곡한 거절에 멍한 얼굴로 변한 현준은 곧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중략) GJ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심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오로지 윤정만을 바라보는 맹목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애정이 가득한 눈망울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칠때면, 그녀는 한가득 벅차는 심정을 느꼈다.(‘후회없는 사랑’ 중)
소설의 주인공은 기자다.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이번 생에는 다시 없을 삼각관계 로맨스의 주인공이 돼봤다. 흔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젊고 잘생긴 CEO 현준과 소심하지만 나만을 바라봐주는 평범한 남자 GJ사이에서 고민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설정했다. GJ는 현재의 남편(실제 소설에는 실명을 넣었다)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던 윤정이 결국 GJ를 선택하는 게 이야기의 골자다. 마지막에는 현재의 딸아이 이름도 나온다. 이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내맘대로 소설’이 탄생했다.
|
해당 서비스는 이야기 큐레이션 앱 ‘바이트-한입거리 이야기’가 운영하는 ‘소설처방’이다. 앱을 통해 간단한 신상정보와 사연을 써서 보내면 2000자 분량의 소설로 써서 사연자에게 작은 책자를 보내준다. 이용료는 3만원이다. 소설을 구상하고 배달하기까지 3일 정도 걸린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소설처방의 의뢰자수는 5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36명의 사연이 ‘3분 소설’(에이치)이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15일 출간됐다.
달빛타래 작가는 “많은 의뢰인들이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며 “대부분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을 받아보면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김수량(42) 바이트 대표가 처음 서비스를 구상한 건 댄 헐리의 ‘60초 소설’을 보고나서다. 소설가로 먹고 살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던 그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1분만에 소설로 써줬다. 이후 미국 전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났고 2만2613편의 소설을 썼다. 이 이야기에서 착안해 ‘바이트’를 만들게 됐다.
사연 중에는 괴롭히는 직장 상사를 혼내달라는 의뢰가 가장 많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작가들이 그 회사를 때려치우고 훨씬 잘 나가는 식으로 소설에서 풀어써주면 응원과 격려가 됐다고 후기를 보내온다”며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걸 소설로라도 푸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아직 이용자의 80% 가량은 여성들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자기 속의 말을 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며 “현재 이용자 층이 20~30대가 많은데 앞으로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