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남발해 스스로 손실을 입은 경우 국민연금과 소송 결정 관련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경제계에서 나왔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 10여개 경제단체를 회원으로 둔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이 그제 온라인으로 연 산업발전포럼에서 정만기 포럼 회장을 비롯해 여러 참석자들이 편 주장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결정 주체 일원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수탁자책임 활동지침’ 개정안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상정했다. 기존 지침은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에 대해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결정을 내리고,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경우 예외적으로 수탁위에 결정권을 넘기게 돼있다. 개정안은 이렇게 이원화된 주주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계가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자 기금운용위원회가 개정안 의결을 유보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늦어도 다음 달에는 지침 개정을 강행할 방침이다.
경제계의 우려에는 이유가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투자 등 기금 운용 성과를 높이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한다. 따라서 소송 진행에 드는 비용은 물론 패소할 경우 떠안을 수 있는 배상채무에도 신경 써야 한다. 반면 수탁자책임 활동에 특화된 수탁위는 소송 관련 결정에서 기금 운용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수탁위 인적 구성 자체도 편향성이 있다. 사용자단체·근로자단체·지역가입자단체가 3인씩 추천한 9명으로 구성되므로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조 대표 등 근로자단체 추천 위원들과 참여연대 활동가 등 지역가입자단체 추천 위원들을 한 편으로 보면 경제계 입장을 대변하는 사용자단체 추천 위원들은 소수다.
경제계가 오죽하면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의 피해도 아닌 국민연금 자체의 손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부과를 주장하고 나섰을까 싶다. 정부가 기업 경영에 큰 지장을 안길 수 있는 조치를 고집하니 견제 장치라도 두겠다는 것이다. 경제계의 주장은 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법 원리에도 부합한다. 정부는 경제계의 우려를 살펴 보완책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