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의 경세제민]스태그플레이션 위기, 시장경제서 답 찾아야

  • 등록 2021-08-12 오전 6:10:00

    수정 2021-08-12 오전 6:10:00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고려대 16대 총장] 한국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빠질 수 있다는 금융당국의 경고가 나왔다. 본래 기상용어인 ‘퍼펙트 스톰’(초강력 폭풍)은 개개의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해 엄청난 파괴력을 내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용어로는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거대한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상황을 말한다.

지난 6일 취임한 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사에서 현재 한국경제를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금융지원이 절실하면서도 과도한 민간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계기업과 자영업자의 부실 확대, 자산시장의 거품과 가격조정 등의 위험이 한꺼번에 몰려올 수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시장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소비자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균형 있는 금융감독을 통해 신뢰받는 금융시장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퍼펙스톰이 금융감독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위기의 가능성이 있으면 올바른 금융감독을 통해 금융시장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경제자체가 합병증으로 중환자 상태가 되면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다. 자칫하면 1998년의 외환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와 같은 재앙을 다시 겪을 수 있다.

우리경제는 침몰의 덫이라고 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들어서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장기화할 경우 경제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팽창정책을 펴면 물가만 더 오르고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긴축정책을 펴면 경기만 더 침체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어떤 정책을 펴도 상황이 오히려 악화해 경제의 목을 죄는 자기모순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를 방치하면 경제 스스로 위기를 확대하는 악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특히 자영업과 소상공인 가운데 사업이 부실해 빚더미에 올라앉고 생계가 불안한 가구가 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 물가가 1년 전에 비해 2.6% 상승했다. 지난 4월 이후 4개월 연속 2%대의 상승률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서서히 경제 저변부터 무너뜨리는 현상을 낳고 있다.

실로 큰 우려는 코로나19가 변이를 계속해 대유행이 확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기침체는 통제 불능의 상황이 된다. 정부는 민생지원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재정지출을 확대한다. 물론 정부부채가 증가한다. 한국은행도 발권력을 동원해 계속 돈을 풀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재정지출과 통화공급이 과잉 유동성을 낳아 물가가 급등하는 것이다. 경제정책은 경제를 망가뜨리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복용하는 마약의 성격을 띠게 된다. 부동산,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의 가격조정이 퍼펙트 스톰을 부르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소득하위 20%는 가처분 소득의 60% 이상을 빚 갚는 데 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기 어려운 좀비기업이 10곳 중 4곳이나 된다. 정부도 부채가 늘어 GDP대비 45%가 넘는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 가계, 기업, 정부가 동시다발적으로 부도위험에 처할 수 있다. 특히 국제추세에 따라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부도의 태풍에 휘말린다.

경제가 이런 상황에 처한 된 배경에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 현 정부는 시장기능을 대신해서 정부가 경제를 살리는 소득주도성장을 기본정책으로 펴고 있다. 초대형 예산을 편성해 재정지출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경제는 시장기능에 의한 산업발전과 성장동력의 창출 없이는 발전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이 실패로 돌아가 국민의 세금을 먹는 하마로 바뀌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아예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포기하고 무제한적인 자금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한 해 추경편성만 67조원에 달한다. 정부의 정책실패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조세강화, 대출규제, 거래제한 등 시장을 통제하는 정책을 펴다가 시장의 반격을 받아 혼란 사태를 빚고 있다. 집값이 폭등하자 무주택자들이 빚을 얻어 주택을 대거 매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절망한 청년세대는 빚을 내 주식과 가상화폐의 투자에 매달렸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유력주자들이 선심성 퍼 주기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기본소득, 공정소득, 청년 세계여행, 사회출발 자금, 미래 씨앗통장 등 종류가 다양하다. 경제의 퍼펙트 스톰을 자처하고 나라를 그리스나 베네수엘라 같이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1970년대 미국경제는 석유파동을 계기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 카터 행정부는 10%대까지 치솟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취업프로그램 운영 등 갖가지 재정정책을 폈다. 동시에 10%가 넘던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가격통제와 임금삭감 정책을 폈다. 카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나고 세계경제의 선두를 일본에 내주는 치욕을 맞았다. 이후 들어선 레이건 행정부는 시장경제를 중시해 세금감면, 규제완화, 달러화 안정 등의 정책을 폈다. 초기에는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를 기록하며 부작용이 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근로의욕과 투자의욕을 고취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미국경제를 다시 살려냈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재난 지원을 위한 재정과 통화정책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정교한 방역조치와 백신의 조기접종으로 코로나19의 피해를 줄여야 함은 물론 최소의 자금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정책조정이 필수적이다. 이와 더불어 사업주와 근로자를 함께 쓰러뜨리는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도 유예하거나 신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경제의 퍼펙트 스톰을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기업의 창업과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중자금이 산업발전으로 흘러 성장동력과 고용능력을 창출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는 수출이 늘어 지난 7월에는 554억 달러의 월간 실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에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규제개혁, 노동개혁, 산업구조혁신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소모적 재정과 통화정책을 생산적으로 바꿔 강력한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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