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은 아닙니다”…이름뿐인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만 5년째 집행률 5% 미만
주치의 567명 신청 활동 겨우 88명
건보공단 실제 서비스 확인 ‘모르쇠’
의협 등 “수가 맞지 않아…확대 필요”
  • 등록 2022-08-08 오전 6:00:00

    수정 2022-08-08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산부인과여도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이라고 해서 연락했는데, 남자는 안 본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제가 잘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선경(37)씨는 중증장애가 있는 아들이 잔병치레가 많자 주변에서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를 활용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건강보험공단 누리집을 통해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을 찾았다. 그런데 집에서 가까운 서울 강동구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은 4곳에 불과했고 이 중 절반이 산부인과였다. 산부인과여도 다른 진료도 보지 않을지 기대하며 연락했지만, 다른 곳에 연락해보라는 답변만 받고 말았다. A병원 관계자는 “산부인과다 보니 여성 장애인이 오면 관련 진료를 보긴 하지만, 그 외 진료는 어렵다”며 “합당한 병원에 연락해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벌써 5년…아직도 ‘시범’ 못 떼는 이유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중증장애인이 주치의를 통해 구강관리와 만성질환, 장애관련 건강상태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방문진료·간호, 중간 정검 등의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자 2018년부터 시작된 시범사업이 5년째를 맞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이 입법발의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등록 주치의는 567명이었지만 활동 기록이 있는 장애인 건강주치의는 겨우 88명(15%)에 불과했다. 만약 건보공단을 통해 장애인 주치의 의료기관을 안내받았어도 10곳 중 9곳 가까이 장애인 주치의로 활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2020년 12월 말 기준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중증장애인은 98만4965명이나 됐지만, 실제 이용한 장애인은 1535명에 그쳤다. 복지부 사업 진행률도 1단계 1.1%였던 것이 3단계 연장사업에서 4.3%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5%를 밑돌고 있다. 예산이 60억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사용된 예산은 2000만~3000만원도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의 도입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르면 주치의로 등록하려는 의사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운영하는 주치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 가능하다. 이 정보는 건보공단 시스템과 연동해 건보공단 홈페이지에서 장애인 주치의 의료기관으로 안내되도록 설정됐다. 문제는 교육만 받고 실제로 활동하는 의사는 소수에 불과한데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건보공단에서 그대로 안내하고 있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의사) 본인들이 등록한 거라 (장애인 주치의로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땐 본인만 취소가 가능하다”며 “간혹 장애인 보호자들이 (의료기관에) 연락해 (서비스가)안 된다고 한다면 우리도 확인 후에 취소 여부를 확인할 텐데, 이런 빈도수가 많지 않아 전수조사 등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을 인지한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의 지정, 관리, 보상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복지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관련 제도를 손질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들이 일단 교육을 받지만 정작 하려고 하면 손해를 보다 보니 안 하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라며 “앞으론 교육을 받았다고 무조건 지정기관이 되는 게 아니라 관리와 보상 등도 함께 주는 방안이 필요할 것 같다. 수요 공급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하나씩 살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장애인 2차 질환 쉽게 노출…관련 개정안 국회서 먼지만


장애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이 77.2%로 비장애인(34.9%)에 비해 2배 이상 높고, 경증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장애로 말미암은 2차 질환이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비장애인보다 병원의 손길이 더 필요하지만, 병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거동이 불편해 이동이 쉽지 않거나, 거동이 자유로워도 병원에서 만약에 있을 수 있는 돌발 행동으로 병원에서 입장을 꺼리는 곳도 있다.

국회에서는 건강 주치의 제도의 지원 대상을 확대해 경증장애인도 지속적인 건강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관련법안 손질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개정안은 국회 의사협회의 반대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수용 곤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은 “현재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 주치의 제도의 정착이 미흡한 상황에서 재정 여견 등을 고려하지 않고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의사들의 가정 방문 진료를 위해선 그만큼 다른 진료를 포기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수가 확보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증장애인이라 하더라도 비장애인에 비해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고, 장애로 인한 2차 질환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며 “장애인 건강 주치의 제도의 대상을 경증장애인까지 확대하는 장애인 건강권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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