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일'에서 '업'으로

  • 등록 2023-01-03 오전 6:15:00

    수정 2023-01-03 오전 6:15:00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한해의 운세에 관심이 많다. 대부분 재미로 알아보는 것이겠지만 내심 지난해보다 더 나은 올해를 꿈꾼다. 운세 대신 개방형 인공지능(Open A.I.)으로 2022년 12월 공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 ‘Chat GPT 3’에 물어보았다. “새해에 떠오르는 첫 단어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A.I.는 좀 독특하게 대답한다. “Fresh start, Hope, Dreams, Goal-setting, Motivation, Resolution, Prosperity, Growth, Renewal, Optimism, Joy, Success.”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이 살아가며 가장 익숙한 두 단어가 있다. 영어단어로 Vocation과 Job이 그것이다. Vocation은 사전적 의미로 ‘소명, 천직’으로서의 ‘직업’이라 번역하고, 반면에 Job은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뜻한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와 정치학자 케네스 샤프의 공저 ‘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는 병원 청소부로 일하는 루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어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루크는 한 청년이 누워있는 병실을 평소와 다름없이 청소했다. 청년은 사고를 당해 여섯 달이 지나도록 의식불명으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종일 그의 아버지가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은 왜 우리 아들의 병실 청소를 안 했나요?” 화난 어조로 환자의 아버지가 루크에게 항의한다. 잠시 환자의 아버지가 자리를 비웠다가 병실로 들어오는 길에 그를 만난 것이다. 그의 대답은 어땠을까? “아까 청소했는데요?”였을 것이다. 그러나 루크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병실로 들어가 한 번 더 정성을 다해 청소했다. 루크의 대답은 병마와 싸우는 청년과 그 아버지의 애틋한 심정을 행동으로 위로한 것이다. 이미 청소했지만, 다시 한번 더 청소하는 마음은 그의 업(業)에 대한 소명, 즉 vocation을 잘 나타낸 장면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고속열차를 이용하다 보면 청결하지 않음은 물론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화장실과 객차 사이의 통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연착은 물론 시스템 장애와 재해 사망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혁신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미흡해 고객의 비판이 많다. 그러나 일본, 유럽의 철도 서비스를 접하게 되면 부러운 점이 여간 아니다. 비싸긴 하지만, 천장까지 통유리로 된 파노라마 전망을 갖춘 최고급 식당 열차, 고급 호텔 수준의 실내장식을 갖춘 최신형 침대칸, 그 나라의 전통문화나 지역의 특성을 모티브로 한 객실 인테리어 등 매우 창의적이고 세련됨을 느낀다. 일본의 친절 서비스는 특히 유명하다. 신칸센 열차 역무원들이 플랫폼에 나와 한 줄로 서서 공손하게 영접하거나 지역민들과 함께 특산 과자를 나눠주기도 한다. 친절이 몸에 밴 탓이고,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알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앞서 인공지능 ‘Chat GPT 3’은 새해의 첫 단어에 행복(happiness)이 아닌 기쁨(joy)을 나열했다. 이 두 단어는 언뜻 유사한 듯 하나 본질과 감정의 지속성, 깊이가 확연히 다르다. ‘기쁨’은 공동체의 관계에서 찾는 최고 수준의 가치이고 진정한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쁨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누구에게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고, 이는 ‘해야 하는’ 일에서 ‘스스로 하는’ 업(業)으로 승화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작년 수학계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는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주길 바랍니다.” 새해의 시작은 마음을 담은 친절의 인사와 업(業)의 숭고함이 함께하길 소망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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