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ESG 투자는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연기금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지만, 아직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은 데다 국내 ESG 기업도 많지 않아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검은 기업, 투자유치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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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맥을 못 쓰는 배경으로는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호주 산불이 꼽힌다. 산불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서 그 여파에 BHP의 공장가동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실제 작년 하반기 BHP 소유의 뉴사우스웨일스 광산의 에너지 석탄 생산량은 전년동기대비 11% 줄었다.
검은 기업에 대한 타격은 더 세질 전망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신용트렌드 보고서에서 ‘기후규제는 신용등급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정의했다. 돈에 민감한 자산운용 업계도 잰걸음이다.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 블랙록자산운용은 지난달 투자자에게 보낸 연례 편지에서 ‘화석 연료 기업에 투자를 종료(exiting investments)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는 연초 논평에서 호주 산불과 이런 흐름을 짚으면서 ‘ESG가 현재 얼마나 중요한 사업상 변수인지를 되돌아보게 된다’고 밝혔다.
해외엔 다양한 상품 잇따라
글로벌 친환경 투자는 이런 흐름을 기반으로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대세 투자수단으로 부상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친환경’이다. 미국 ETF 전문지 ETF닷컴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ETF의 최근 1년 수익률 상위 5개는 모두 친환경 산업에 투자하는 ETF가 차지했다.
상품별로 보면 수익률 2위(47.4%) Invesco Solar ETF는 태양광 대표 ETF로 꼽힌다. 태양광 매출이 전체의 3분의 1 이상 기업이 투자 대상이다. 수익률 4위(40.5%)와 6위(39%), 7위(35.3%) ETF는 재생에너지와 풍력 기업에 투자한다. 수익률 1위(88.2%) Aberdeen Standard Physical Palladium Shares ETF가 투자하는 팔라듐이 친환경 소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익률 상위를 친환경 ETF가 휩쓴 셈이다. 전체 ETF 1974개(레버리지·인버스 제외) 가운데 거둔 성적이다.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품도 진화하고 있다. 인류 식습관을 고쳐 친환경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U.S. Vegan Climate ETF는 동물 학대와 환경 파괴 등 기업을 제외한 미국 우량주 약 500개에 투자한다. 가축을 기르는 과정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데서 착안한 상품이다. 대표 대체육 기업 비욘드미트(Beyond Meat, Inc.)도 포트폴리오에 편입돼 있다. 채식산업에 투자하는 Dx IET ETF도 등장하는 등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개념도 희미한 국내 현주소
국내 현황은 척박하다. 펀드평가회사 KG제로인이 ESG펀드로 구분하는 상품은 6개 운용사의 11개 상품(7개는 ETF)이 전부다. 운용 순자산은 상품당 최대 230억원 안팎으로 미미하다. 투자 대상과 투자 주체가 마땅찮은 게 제약이다. 국내 주식시장을 지배하는 대기업의 사업영역이 넓은 탓에 친환경 기업을 선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ETF 매니저는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계열사와 태양광 업체를 가진 대기업을 환경친화적이라고 평가하기는 것은 모순”이라며 “대기업을 빼면 투자할 기업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라고 말했다.
투자 열기도 뜨뜻미지근하다. 판매사의 상품 담당자는 “투자자가 원하는 상품은 친환경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례로 삼성자산운용의 상장지수펀드 KODEX태양광이 2011년 7월 상장해 2013년 6월 상장 폐지된 것은 소규모 ETF 장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덩치가 큰 기관이 주도해 친환경 투자 환경을 조성할 만도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며 “이들은 대표 지수를 좇기 때문에 테마 투자로 분류하는 친환경 투자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장의 성숙도를 고려하면 단정짓기엔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상위권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국내에 EGS 개념이 들어온 지 수년 밖에 안된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검증 단계이지, 뿌리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기는 이르다”며 “아직 막연한 ESG 개념을 국내 현실에 맞게 얼마나 구체화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