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국내 기업들까지 회원사로 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미국의 대(對)중국 규제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과 관련, 업계 안팎에선 규제 불확실성에 지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거대한 중국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반도체업계로선 미국 규제가 거듭할수록 중국에서의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로고. (사진=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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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SIA는 미국의 대중 규제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협회는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며 일방적인 제한을 가하는 조치는 공급망을 교란하고 상당한 시장 불확실성을 야기한다”며 미 정부에 추가 규제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SIA에는 인텔과 IBM,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뿐 아니라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우리 기업도 회원사로 있다. SIA는 성명을 내기 전 우리 기업들과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성명은 미국의 추가 중국 규제가 예상되면서 마련됐다. 미국은 이달 말 중국에 AI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도 반도체기업들은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자국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를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우리 기업에는 올해 10월까지 해당 규제를 유예했고 미국 상무부는 유예 연장 여지를 남겼다. 다만 중국과의 갈등이 커질 경우 유예가 끝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우리 반도체기업들의 중국 시장 수익도 쪼그라들고 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5조565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6.8% 줄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은 59.5% 급락했다.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율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 비중은 보통 15~17% 수준을 유지했으나 작년 11.7%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는 8.7%까지 미끄러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9년 46%에서 매년 감소해 지난해 27%로 집계됐다.
우리 기업들이 아직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를 적용받는 만큼 최근의 중국 매출 감소가 미국 규제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출 통제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고 미국의 추가 규제도 나오면 현지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어려워져 갈수록 중국 사업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리오프닝 효과도 작은 상황인데 규제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중국에서 수익을 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시장 규모 때문에 중국 시장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반도체 시장 규모를 5150억9500만달러(662조4122억원)로 예상했는데, 일본을 제외하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비중은 55%에 달한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중국은 다양한 세트기업들이 있는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기 때문에 수요 증감 등 규제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며 “첨단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를 보려면 중국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