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분당 1400원' 비싼 국제전화로 안부 전했죠"

서울 창신동 네팔음식거리·광희동 중앙아시아촌 가보니
이주민들도 '가정의달·어버이날' 가족 생각에
국제전화·SNS로 안부 나누며 '반가운 목소리'
"다문화 사회 앞두고 보편적 감정 공유 필요"
  • 등록 2023-05-08 오전 6:00:00

    수정 2023-05-08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김영은 수습기자] “1분에 1400원짜리 비싼 국제전화 붙들고 ‘걱정말라, 나 잘 지낸다’고 수차례 안심시켰죠. 어딜 가나 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똑같으니까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음식거리에서 힐커 만 구릉이 운영하는 한 네팔요리전문점에서 네팔인 종업원들이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일을 하고 있다.(사진=김영은 수습기자)
7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음식거리에서 만난 힐커 만 구릉(47·국적 네팔)은 8일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고향 생각에 국제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그는 24세 때 고향 부모 곁을 떠나 1999년 한국으로 이주해 온 뒤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즌에 이곳에서 네팔요리 음식점을 열었다. 구릉은 20년 넘게 가게를 운영을 하고 있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지만, 마음 속 한곳엔 늘 고향을 품고 있다. 그는 “네팔의 ‘어머니날(4월20일)’을 앞두고 어머니가 78세 나이로 고향에서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미루다가 잘해 드리지 못한 게 생각나더라”며 “힘들었던 시절 보름에 한 번씩 공중전화를 붙들고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5월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우리 이웃 속 구릉과 같은 외국인 이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네팔음식거리 인근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촌(중앙아시아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을 20년째 운영 중인 아모노브 사리울혼(53·국적 우즈베키스탄)은 “25년 전 한국에 들어와 한 시골 공장에 취직했는데, 고향에 있는 가족 목소리를 들으려면 일 마치고 밤에 공중전화 박스까지 몇 시간을 걸어야 했다”고 회상하며 “우즈베크에는 따로 어버이날이 없지만, 다시 만난다면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장미꽃을 드리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중앙아시아거리에서 꼬치집을 차린 지 1년 됐다는 엘도르 아카(30·국적 우즈베키스탄)는 고향에 있는 부모와 매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안부를 나눈다. 그는 “대학 어학당에 공부하러 왔다가 장사를 시작했는데 부모님이 많이 걱정한다”며 “매일 괜찮다고 안심시켜 드리지만, 애써 전통 음식 조리법을 가르쳐 놓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도망갈 땐 서글퍼서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동업자 자수르(30·국적 우즈베키스탄)도 “부모님이 텔레그램으로 하루에도 두세 번씩 전화를 걸며 ‘보고 싶다’, ‘건강하냐’, ‘언제 들어오냐’, ‘결혼 안 하냐’ 등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시는데 연로한 부모님이 아프시진 않을까 걱정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고 말하며 웃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촌(중앙아시아거리)에서 한국에 귀국 정착한 고려인 야나(왼쪽)가 자신이 운영하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서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사진=김영은 수습기자)
16년 전 한국에 와 어머니와 함께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을 10년째 운영 중인 야나(42·국적 한국)는 “고향이 경기도 수원인 외할머니가 3세 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외가 여자 식구들을 모두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 고려인이 됐다”면서 “이제는 엄마와 함께 한국에 돌아와 정착했지만, 엄마는 늘 떨어진 가족들을 떠올리며 쓸쓸해 하신다”고 전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 기준 약 220만명으로 전년(2021년)대비 약 14.8% 증가했다. 이 중 국내 체류 3개월 이상 장기 체류자(외국인 등록·거소신고자)가 168만명 이상으로 우리나라 총인구(약 5140만명) 중 약 3.3%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가 총인구 중 이주배경 인구가 5%를 넘으면 ‘다문화 국가’로 규정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의 문턱에 들어와 있다.

이상복 한국다문화나눔센터 대표는 “이주민들은 고향과 떨어진 만리타국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치권과 민간이 협력한 다문화협동조합 등을 통해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처럼 인류 보편적 감정을 공유하는 날을 함께 기념하는 등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를 맞이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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