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막대한 청정기술 개발비용에 허덕…"美·EU처럼 정부 지원 늘려야"

[尹정부 탄소중립 톺아보기]③산업
유례없는 9조원대 대규모 투자
경제적 측면선 반길 일이지만,
탄소중립 부담 그만큼 커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줄었지만
국제사회 압력에 부담은 여전
미·EU 같은 정부 지원 확대로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어야
  • 등록 2023-04-03 오전 5:00:00

    수정 2023-04-03 오전 5:00:00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환경부가 지난 21일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부문·연도별 감축량 목표치를 제시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윤석열정부의 첫 로드맵이다. 문재인정부와 비교해 기업들의 부담을 대폭 줄이고, 원전·재생에너지 확대와 미래 기술, 국제협력 등으로 부족분을 상쇄해 7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데일리는 윤 정부가 ‘2030 NDC’를 통해 제시한 각 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실현 가능성과 보완점 등을 총 5회에 걸쳐 긴급 점검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정부가 산업 부문에 대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14.5%에서 11.4%로 3.1%포인트(810만t) 낮췄지만 산업계는 웃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낮춰준 목표치마저도 달성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새로운 통상 규범으로 삼으려는 국제 사회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2030년 목표 낮췄지만…산업계 부담은 여전

2일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정부가‘2030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NDC)’에서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는 종전 11.4%로 낮췄다. 산업계는 현재의 청정기술 개발 속도 등을 감안하면 2030년까지의 감축률이 5%가 한계라는 입장이다.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3대 산업의 경우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한, 탄소배출을 줄일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이들이 국내 생산을 줄이면 연관 산업도 공급 부족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센터 실장은 “산업계도 목표의식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기술과 원료 수급 등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20조원을 투입해 석탄 대신 수소로 철강 제품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 공법, 이른바 ‘하이렉스(HyREX)’ 제철소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순항하더라도 2031년 착공해 2033년부터 연 250만t의 철강을 생산하는 게 한계다. 2030년까지의 정부 감축 목표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기업들도 탄소중립 시대에서의 생존법을 고심하고 있다. 정부의 NDC 목표는 구속력 없는 선언적 목표라지만,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국의 탄소중립 압력은 당장 코앞에 닥쳐온 실질적 부담이기 때문이다. EU는 작년 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을 확정하고 2026년부터 철강 탄소 다배출 수입 제품에 대해 별도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부터 철강 등 탄소 다배출 수입 제품에 대한 보고 의무를 부여할 예정이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은 작년 말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용을 부과하려는 목적으로 ‘기후클럽’을 창설했다.

배진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요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톱다운(Top-down) 형태의 국제적 규범화는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가속화할 조짐”이라면서 “국내에서도 배출권 거래제도 강화 등 탄소가격 부과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2030년이 되면 국제 무역규범은 탈탄소로 옮겨갈 것”이라며 “이대로면 우리 기업,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탄소중립 부문에 막대한 예산 투입 계획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해법은 청정기술 개발 촉진…“정부 지원 절실”

전문가들은 청정기술 개발 촉진을 해법으로 꼽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배출권 거래제 강화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은 물론, 기술 지원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철강업계는 현 고로 방식에서 전기로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수소환원제철 등 청정 신기술을 도입하고, 석유화학은 원료를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납사(나프타) 대신 바이오로 전환하고 폐플라스틱의 원료 활용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시멘트 산업도 현재 유연탄을 사용하는 연료 일부를 폐합성수지로 대체하거나, 석회석 연료에 혼합재를 사용하는 비율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문제는 이 기술들이 대부분 아직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 전 단계라는 점이다. 이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은 막대한 전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주요국이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예산 지원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EU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탄소중립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이미 천문학적인 예산 투입을 확정했다. 미국은 지난해 총 3910억달러(약 550조원)의 탄소중립 예산을 반영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의 1년치 예산에 조금 모자라는 수준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EU 내 탄소중립 산업 육성을 지원하기 위한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 초안을 공개했다.

우리 정부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 달성을 위해 5년간 9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디에 얼마나 투입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특히 산업 부문 감축 계획은 총량만 나왔을 뿐, 철강 등 업종별로 어떻게 얼마나 줄일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현 시점에선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세우기 난감하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기업은 (목표치 변경과 무관하게)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당장의 (전환)비용 부담 고민이 크다”면서 “기업이 산업 경쟁력을 잃지 않은 채 탄소중립에 나서려면 미국, EU 같은 대규모 예산 및 세제 혜택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미국과 EU의 관련 법안 내용을 보면 자국 기업 경쟁력은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명백한 방향이 있다”며 “우리도 정부 지원 아래 관련 기술·산업을 주도한다면 해외 시장 진출 길도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스코의 친환경 제철 공법 하이렉스(HyREX) 개요. (사진=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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