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노조 교섭단위 결정시 형식뿐 아니라 실질적 내용도 살펴야"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의 교섭단위 분리 요구
1심 분리결정 부당…"근로조건 차이 없어"
2심 "임금항목·직종 다르다"…대법 파기환송
"호봉제회계직 3% 안돼…대부분 사무실무사"
  • 등록 2023-01-06 오전 6:00:00

    수정 2023-01-06 오전 6:00:00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광주광역시 공립학교 호봉제 회계직 근로자가 다른 교육공무직 근로자와 별도로 교섭단위를 분리해달라고 주장했지만 분리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광주 지역 호봉제회계직 근로자 대부분이 행정실 잡무 등을 담당하는 ‘사무실무사’인 만큼 다른 교육공무직원 업무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노조 교섭단위 분리 여부 결정시 단순히 형식적인 차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와 더불어 실질적인 근로의 내용과 조건 등을 면밀히 살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선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광주광역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호봉제회계직 근로자 교섭단위 분리결정 재심판정의 취소를 청구한 사건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6일 밝혔다.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다른 교육공무직 근로자 사이에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어 예외적으로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현재 광주광역시 지역 내 교육공무직 근로자(모두 비공무원)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인원은 약 4000명이다. 공립학교 호봉제회계직 노동조합(110명) 외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약 2960명), 전국여성노동조합(약 460명),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약 420명) 등 노동조합은 총 4곳이다.

앞서 2019년 9월 26일 호봉제회계직이 속한 노동조합은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광주광역시의 교섭단위 중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들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해 달라는 신청을 했다. 이에 전남지노위는 2019년 10월 25일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들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한다는 결정을 했다.

광주광역시 소속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들과 다른 교육공무직원들 사이에 임금과 직종 등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고, 고용형태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교섭단위를 분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커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광주광역시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전남지노위의 이같은 결정에 불복해 2019년 12월 9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2020년 1월 8일 호봉제 근로자와 비호봉제 근로자 사이에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가 있고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호봉제 근로자의 권익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자료:대법원
1심은 분리결정이 부당하다고 보고 광주광역시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비호봉제 근로자간 월평균 임금 수준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타난다고 보기 어렵다”며 “동일한 방식의 퇴직금 제도를 적용받고 근로시간, 근로형태, 휴일, 휴가, 정년 등 복무와 관련된 근로조건도 완전히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다른 교육공무직원들은 무기계약직, 기간제, 시간제의 다양한 형태로 근무하고 있지만, 대부분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들과 동일하게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점에서 양자 간에 고용형태의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근로조건과 고용형태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허용하게 되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사실상 형해화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2심은 분리결정이 정당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교섭단위별 임금체계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임금의 지불 단위, 임금항목의 구성, 임금항목의 결정 기준을 비교·검토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며 “양자간 임금체계는 임금항목을 결정하는 기준이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들의 업무형태는 학교의 행정실무와 시설관리업무 등을 담당하는 것으로서 대동소이한 반면, 비호봉제 근로자들은 50종을 초과하는 다양한 직종으로 구성돼 있고, 직종마다 업무환경이나 업무의 내용이 상이하다”고 판단했다.

자료:대법원
하지만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은 뒤집혔다. 양자간 근로조건에 차이가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동종·유사 업무를 담당하는 비슷한 경력의 근로자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경로와 방법으로 월 평균 임금 수준을 거의 동일하게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양자 사이에 비슷한 수준의 임금이 형성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금 수준에 실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광주광역시 지역 내 호봉제회계직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는 학교·교육·학사행정업무 또는 그 보조업무에 해당해 다른 교육공무직원이 담당하는 업무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고, 특히 ‘행정실무사·교무실무사’의 업무와는 구별이 어려울 정도의 동종·동일 업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특히 “광주 지역 내 교육공무직원의 3%에 미치지 못하는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의 업무조건에 대한 결정은 비호봉제 근로자의 업무조건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교섭창구를 단일화함으로써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와 동일·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원고 지역 내 다른 교육공무직원 사이의 근로조건을 통일적으로 형성할 필요성이 오히려 커 보이고, 이는 안정적인 교섭체계를 구축하려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원심 판단에는 구 노동조합법 제29조의3 제2항에서 정한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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