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사의 또 다른 일화다.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는 뜻으로 교사가 학생에게 “좀 고지식 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해당 학생은 이를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고지식하다는 말을 ‘고(High)+지식(knowledge)’으로 이해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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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영어교사 “한글 해석본도 이해 못해”
교사들은 학력 미달 학생을 대상으로 보충수업을 하고 싶어도 학생·학부모의 반대로 이마저도 어렵다고 토로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3학년 수학을 가르치는 권철현(가명·40) 교사는 얼마 전 기초적인 인수문해 문제를 풀지 못하는 민수(가명)를 수업 후 따로 가르쳐보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민수가 따로 남아 공부해야 하는 것을 싫어하고 부모님도 반대해 포기했다”며 “요즘에는 자기 아이가 뒤처진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권 교사는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의 학력평가가 이뤄져야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연산을 마스터하지 못하고 중학교에 오면 학업에 뒤쳐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수포자가 되는 것”이라며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의사가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려야 하는데 일제고사를 폐지하다보니 학생들의 학력수준 파악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시험보지 않는 학교…기초학력 미달 사상 최악
원인은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초등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시험을 보지 않는다. 2007년 교육감 직선제 시행 후 전국적으로 진보교육감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진보를 표방한 교원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지금은 전국 17명의 시도교육감 중 14명이 진보성향으로 분류된다. 10년 전에는 초등학교 6학년도 일제고사에 해당하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렀지만 이마저도 2013년 폐지됐다. 교사들은 “중2 때 지필고사를 보면 OMR카드의 사용법을 모르는 학생이 태반”이라고 했다.
이는 학력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진보교육감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일부 교원단체가 ‘학교 서열화 반대’를 주장한 끝에 학업성취도 전수평가(일제고사)를 폐지했는데 그 결과는 계층 간 학력격차의 심화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이수영(가명·42)씨는 “전교조 주장대로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진보교육감들이 평가를 등한시하면서 중1까지 학생들은 시험을 보지 않는다”며 “하지만 상류층 아이들은 이 기간에 학원에서 레벨평가를 통해 필요한 부분을 보충학습으로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제고사 부활에 회의적인 교사들도 평가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이정희(가명·40)씨는 “초3을 담당하는데 요즘 한 반에 구구단을 못 외우는 학생이 30% 정도”라며 “6년 전만 해도 초4부터는 중간·기말고사를 치렀는데 지금은 이런 시험마저 모두 폐지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대학입시 자체에 수능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수능 자체가 일제고사”라며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입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초·중학교에서만 시험을 보지 말라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고 지적했다.
※용어설명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근거해 학생들의 교육목표 달성 정도를 평가하는 것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한다. 2008년부터 전수평가로 진행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2017년부터 표집평가로 전환, 중3·고2 학생의 3%만을 대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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