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에 올라온 글에서 자신을 고학번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ㄱ 학회의 족보 문제는 10여 년 전부터 유명했으며, 실제로 ㄱ학회의 시험문제 유출 및 족보가 문제가 돼서 해당 학회의 족보 데이터베이스(data base)를 삭제하는 조치를 취했었는데 여전히 변한 게 없는 것 같다고 글을 남겼다.
이를 두고 ‘시험 문제를 똑같이 내는 교수도 문제지만, 학회라는 조직 차원에서 문제를 복기하고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는 게 혐오스럽다’, ‘이걸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자기소개서에 당당하게 적어라’, ‘다수의 학생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학회는 해체해야 한다’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
반면 ‘족보를 못 구한 건 너네가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라서 그런 거 아니냐’, ‘솔직히 다른 학회, 동아리도 다 족보 만들지 않냐’는 등 ㄱ학회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글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대학마다 겪는 족보 문제, 공공연히 판매되기도
사실 족보 문제는 A 대학뿐 아니라 다른 대학교에서도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어 왔다. 서울 내 B 대학을 다니는 학생 경진형(가명·25) 씨는 “족보 없는 학생이 일주일 동안 공부하면서 맨땅에 헤딩할 때 족보 있는 학생들은 시험 하루 전에 족보 읽고 성적을 좋게 받는다”면서 “족보를 공유하는 사람이 과내에 많은데 학과 인원수가 적어서 문제를 제기하면 누가 말했는지 너무 쉽게 퍼지기 때문에 공론화시키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 소재 C 대학을 졸업한 성규남(가명·27) 씨도 “족보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왔고 다들 알지만 쉬쉬하는 느낌”이라며 “족보를 쓰는 사람 입장에선 편하고 좋지만 그 혜택을 못 받는 사람도 분명 있기 때문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서울에 있는 D 대학을 다니는 장금일(가명·23) 씨는 “예체능 전공을 할 땐 몰랐는데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면서 확실히 족보의 위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족보가 있으면 한 학기가 정말 편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족보는 학회나 동아리 내에서 공유될뿐 아니라 공공연히 판매되기도 한다. 학교마다 있는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족보 거래가 이뤄지는 건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에브리타임 자유게시판에도 족보를 사거나 판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최근에는 한 발 더 나가서 아예 족보를 사고파는 ‘족보게시판’이 에브리타임에 따로 생기기까지 했다.
교수 노력이 족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족보에 대한 논란을 두고 학생들은 비슷한 시험 문제를 매번 출제하는 교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만들어놓은 문제를 돌려서 계속 쓰거나, 심지어는 문제 속 숫자까지 똑같이 내는 교수들로 인해 족보가 계속해서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익명의 한 교수는 “매번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건 맞다”면서도 “문제를 어떻게 내느냐는 결국 교수 개개인의 문제”이므로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그는 “개인적으로는 최근 2~3년 간의 기출 문제를 다 공개하는 편”이라며 “그렇게 하면 문제를 똑같이 낼 수 없어 새로운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교수는 "중요한 내용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를 낸다는 게 교수 입장에선 어려울 수 있다"고 하면서도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점수에 대한 공정성을 더욱 중요시하기 때문에 교수들도 그런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족보는 10년 전, 20년 전에도 있었던 만큼 그걸 못 만들게 하기는 어렵다"면서 "대신 족보가 무의미해지도록 기출 문제를 공개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부였다.
취업하기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면서 학점이라도 더 잘 따놓으려는 학생들에게 족보는 누군가에겐 날개, 누군가에겐 족쇄가 되고 있다. 공정성,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족보가 돈을 받고 판매되기까지 하는 현실에선 문제 출제의 주체인 교수 측의 실질적인 노력이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