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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스펙’ 대신 ‘직무 역량’ 올인
“토익 점수, 학벌이 더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인턴십 경험 한 줄 생기니까 서류 합격률부터 달라지더라구요. 노력의 방향을 바꿔야한다는 걸 깨달았죠.” (박희원·25)
청년 취준생들은 직무 역량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토익(TOEIC)점수·자격증 등 ‘묻지마 스펙’보다 실무에 필요한 경험을 쌓겠다는 뜻이다. 한국바른채용인증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2022 채용트렌드’에 따르면, 채용전문면접관 375명이 꼽은 채용트렌드 1위(73%)는 ‘직무 중심’이었다. 수시 채용 아래 취업 성패는 직무역량에 달렸다는 의미다.
청년 취준생들이 인턴십(internship)부터 두드린다. 인턴십 취준생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직무 역량을 함양해주는 경험이어서다. ‘금턴’(金과 intern의 합성)이란 신조어가 완전히 자리 잡아 ‘금턴 시대’로까지 불리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준생 1,3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가 ‘금턴’이라는 단어에 공감했다. 또 80%가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적은 ‘체험형 단기 인턴십’도 고사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직무 경험을 쌓기 위해서’(77.9%)라는 이유였다.
박씨는 “인턴 경험 한 줄의 중요성은 상상 이상이다”면서 “서류 합격률부터 달라지고, 면접에서도 다른 경험보다 직무 연관 경험만 직접적으로 묻는다”고 전했다.
수시 채용 기조를 확립함과 동시에 5년새 오프라인 영업점을 1000곳 가량 줄이며 ‘디지털 전환’을 선포한 은행권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 하반기 은행 취업에 성공한 나승호(25)씨는 “(은행권 취업을) 준비하다보니 창구직은 점점 바늘구멍이 돼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면서 “취준생들 사이에서 IT부트캠프(기업이나 단체에서 프로그래밍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만든 별도의 교육 과정)가 은행권 ‘등용문’이라는 말이 돌만큼 디지털 역량이 중요시됐다”고 전했다.
취업 목표 기업 입사에 앞서 중소기업에서 이력을 쌓기도 한다. 비교적 입사가 수월한 중소기업에서 직무역량을 다져 목표기업에 재도전하기 위해서다. 지난 10월 잡코리아가 하반기 구직자 812명을 대상으로 ‘취업 눈높이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5%가 눈높이를 낮춰 취업활동을 하고 있거나 조만간 낮출 계획이었다. 10명 중 9명이 하향취업자(눈높이를 낮춘 구직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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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년 일자리는 암울하다. 직무역량이 강조되는 수시 채용 트렌드에서 경력직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취준생은 사회로의 첫발을 떼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취업문이 좁아지자 첫 일자리의 질이 후퇴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단기계약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이 늘고 있어서다. 졸업 후 첫 일자리가 1년 이하의 계약직인 청년 비중은 47.1%다. 동일 비율을 유지했던 2019년·2020년(41.9%)에 비해 5.2%포인트 증가했다. 첫 직업이 시간제 근로자인 비율도 38.3%로 2년새 최고치를 보였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구직에 성공하지 못한 청년 구직자는 타격이 크다. 통계청이 지난 10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1’에 따르면 졸업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전문대 이상 학력의 청년의 고용률은 지난해 7% 줄어들어 청년층 내에서 고용률이 가장 감소했다. 대학생 홍진기(25)씨는 “은행 면접에 참여했다 다른 은행에서 경력을 쌓고도 신입으로 입사하려는 ‘중고신입’들을 여럿 만났다”면서 “사회로 첫발 내딛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정부 차원의 노력을 촉구했다. 직업훈련전문가인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수시 채용 확대는 졸업 직후 사회로 뛰어드는 취준생들에게 특히 치명적이다”면서 “직무역량을 앞세운 중고 신입·경력직이 먼저 취업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현실에서 대학은 구직에 도전하는 대학생을 위한 직무 역량 강화 교육 등을 보강해야할 할 때다”라고 진단했다.
CJ그룹 인사기획팀장을 지낸 권상집 한성대 교수는 “수시 채용이 트렌드가 됐지만 신입사원에게도 경력직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채용 방식이 올바른지 우려된다”면서 “신규 채용 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인재를 발굴하는 등 등 건강한 일자리 창출 문화를 위한 정부의 다각적 노력도 요구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