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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1호기 자주포 뒷문에 불꽃이 비쳐고 이후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자주포 내부에 불이 붙은 때문이다. 삼성테크윈 소속 탄약수가 가장 먼저 탈출한 데 이어 ADD 소속 부사수와 포반장이 자주포 밖으로 뛰쳐나왔다. 부사수는 등에 불이 붙은 상태로 땅바닥에 몸을 굴렀다. 가장 늦게 화염을 뚫고 탈출한 이는 사수를 맡은 삼성테크윈의 정동수 대리였다. 탄이 들어가는 약실에 새로운 장약을 장전한 상태에서 이전 탄에서 미처 연소되지 않은 추진체 찌꺼기에 불이 붙어 일어난 사고였다. 심한 화상을 입고도 “다른 사람들은 다친 데가 없느냐”고 묻던 정 대리는 사고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34세의 나이. 부인과 어린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된 사거리 40km 이상의 52구경장 K-9 자주포는 개발자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탄생했다. 세상을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다. K-9자주포 개발은 이런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끝에 이뤄졌다. 1998년 겨울에는 눈밭에서 이동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눈을 기다리다가 눈이 쌓이질 않아 스키장을 빌려 시험평가를 마무리 하기도 했다.
K-9 자주포는 우리 손으로 만든 국산 무기다. 앞서 K-55 자주포가 있기는 했지만 이는 미국과 공동생산한 무기였다. 국방부는 1983년 미국과 155mm M109A2 자주포 기술도입 생산 협정을 체결해 K-55 자주포를 개발, 1985년부터 사용해 왔다.
그러나 군은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국산 무기가 필요했다. 군 당국은 1990년 한반도 전장 환경과 장갑차전 양상을 고려해 2000년대 전장에 적합하고 군단작전지원이 가능한 적 종심타격용 화포를 도입키로 했다. 개발 당시 북한은 우리보다 5000문 더 많은 화포를 갖고 있었다. 그중 50% 정도가 자주화 및 차량 탑재형 화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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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자주포는 실전 경험을 갖춘 무기이기도 하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우리군은 K-9자주포를 앞세워 북한군의 포격에 맞섰다.
이날 우리 군과 주한미군의 연례적 연습인 ‘육·해·공 연합 호국훈련’의 중단을 요구하던 북한은 훈련이 끝난 오후 2시 34분께부터 2차례에 걸쳐 개머리 해안포 기지에서 연평도를 향해 170여발의 포사격을 했다. 우리 군은 북한의 첫 공격 이후 13분 후부터 2차례에 걸쳐 K-9 자주포를 동원해 80여발을 무도 해안포 진지 등에 쏟아부었다. 군의 대응사격으로 북한군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었다.
K-9 자주포는 자동 위치확인 기능과 포의고각·포탑의 방향을 감지하는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이를 자동화된 사격통제장치와 연동함으로서 사격 명령 접수후 수초 내에 포와 포탑을 표적 방향으로 구동할 수 있다. 자동사격통제장치에는 탄도를 계산해 사격제원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어 표적좌표만 입력하면 사격 방향과 포의 고각을 산출해낸다. 또한 K-9 자주포에서는 탄의 추출, 송탄 및 장전을 기계화해 인력 투입을 최소화했다.
15초 이내에 3발의 급속사격과 분당 6발의 최대발사속도사격도 가능해 대량 집중사격을 퍼부을 수 있다. 1000마력의 고성능엔진과 자동변속기 및 유기압현수장치가 장착돼 산악지형과 야지에서 기동성이 우수하다.
K-9 자주포는 포병의 주력 무기체계로서 향후 수 십 년 간 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최근 자주포 개발 추세에 맞춰 성능 개량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미국, 독일은 무인포탑 기술을 이미 확보했으며 러시아는 2015년부터 무인포탑 자주포(2S35)를 전력화하기 시작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1999년K-9 자주포의 전력화 착수 이후 K-9 자주포의 운용성 개선 노력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성능향상을 위한 기술 연구가 부진한 상황이다. K-9 자주포 개발로 선진국을 따라잡았던 자주포 기술은 다시 한발 뒤쳐진 상태다. 터키, 폴란드 등 해외 수출 성과를 거뒀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최신 기술을 활용한 성능개량 등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