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위치만 따져 채용 제한…지역 토박이도 서울서 대학 나오면 못 뽑아

[공공기관 지방이전 시즌2]②‘취지 무색’ 지역인재 채용
진짜 지역인재 제외…역차별 논란
전남·경북대 등 편중에 파벌 우려도
지역인재 의무채용 대상 더 넓혀야
  • 등록 2022-08-16 오전 5:00:11

    수정 2022-08-16 오전 5:00:11

[이데일리 김형욱 박종화 기자] 대구혁신도시에 소재한 공공기관 A사는 지난해 신규 채용의 약 35%를 이 지역 대학(원) 졸업자로 뽑았다. 문제는 블라인드 채용을 했는데도 경북대 등 특정 대학 1~2곳의 일부 학과에 채용이 집중됐다는 점이다. 기관 특성상 공대 졸업생을 주로 뽑았는데, 대구·경북지역에 공대가 있는 학교가 6곳(경북대·대구경북과학기술원·영남대·계명대·대구대·금오공대)에 불과한 데다, 지역 대학간 격차가 심해 빚어진 일이다. A사 관계자는 “수 년째 특정 대학 출신 채용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가끔 젊은 직원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면 회사내 파벌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농담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광주·전남은 전남대, 울산은 울산대

비단 A기관 뿐만이 아니다. 전국 10개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본사를 옮긴 153개 공공기관들 대부분이 특정대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광주·전남혁신도시(나주시)의 한국전력공사(015760)(한전)은 지난해 1047명의 신규 채용 중 174명을 광주·전남 지역 대학 출신으로 뽑았다. 한전은 광주·전남 소재 대학 중 공대가 있는 대학 7곳(순천대·목포대·목포해양대·전남대·조선대·동신대·광주과학기술원)에서 골고루 채용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서구갑)이 공개한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채용 현황’ 자료를 보면 전남대 쏠림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전이 채용한 지역인재 146명(2020년기준) 가운데 81명(55.48%)이 전남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한국전력거래소(6명 중 5명), 한국농어촌공사(19명 중 13명) 등 광주·전남 지역 내 다른 공공기관들도 전남대 편중이 심각했다.

한국가스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장학재단, 한국수력원자력 등 대구경북혁신도시의 공공기관들은 많게는 70% 이상이 경북대 졸업생들로 채워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토안전관리원, 한국남동발전 등 경남혁신도시 공공기관들은 지역 인재 채용에서 경상대 졸업생 비중이 60%를 넘었다. 울산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16명 중 15명), 한국동서발전(8명 중 6명)등에선 울산대 비중이, 전북혁신도시의 국민연금공단(57명 중 45명), 한국국토정보공사(28명 중 17명) 등에선 전북대 비중이 유독 높았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올해부터 신입 10명 중 3명 이상 지방대서 의무 채용

정부는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혁신도시법)에 의거해 지역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화했다. 지역인재 채용 비율은 2018년 18%로 시작해 매년 3%포인트씩 높여 올해부터는 30%까지 확대됐다. 지역인재 채용이란 공공기관이 소재지 대학 졸업자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들의 지방 이전 후 서울에 인재가 몰리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특정 대학에 대한 쏠림 현상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인재 채용 대상자를 대학의 소재지만으로 제한해 지방에서 태어나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한 ‘진짜 지역 인재들’은 채용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역차별 논란도 일고 있다.

공공기관들의 인재 풀은 갈수록 줄어들어 “뽑을 사람이 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지난달 전국 대학생 243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는 2년 전 5위였던 한전이 25위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한국가스공사(036460)는 9위에서 32위로 급락했다. 한전KPS(051600), 한전KDN은 ‘적합 인재 미달’을 이유로 채용공고를 다시 내기도 했다. 한 공공기관 인사당자는 “지역 인재 채용 제도 도입 후 신입 직원들의 스펙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인재 기준 비수도권 전제 초광역화 해야”

전문가들은 지역 인재 채용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기 채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균형발전 취지를 살려 비수도권 지역인재 의무채용 비율은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지역 간 장벽은 허무는 방향으로 혁신도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회에서도 관련 개정법률안이 다수 발의됐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재수 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 최인호 의원(부산 사하구갑), 김윤덕 의원(전북 전주시갑), 유기홍 의원(서울 관악구갑) 등은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의무채용 기준을 공공기관 소재지로 국한하지 말고 비수도권 전체로 넓히는 내용의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하지만 각 지자체, 대학들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국회 국토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경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B사 관계자는 “많은 공공기관 직원은 어차피 입사 후 전국 지역본부를 돌며 근무해야 하는데, 현 지역인재 기준의 좁은 풀로는 필요한 인재 채용이 쉽지 않다”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지역인재 기준을 보다 폭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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