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시간대에 불이 났지만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았고 종착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어서 천만 다행스럽게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신년 벽두부터 대형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이날 오전 7시 10분께 서울지하철 7호선 가리봉역에서 철산역으로 가던 7017호 전동차에서 불이나 차량 3량이 전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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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인 서울시는 대구지하철 참사 직후 “지하철 의자를 불에 잘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날 사고는 내장재가 교체되지 않는 구형 전동차량이었다.
특히 1차 진화 작업에도 살아남은 불씨 하나가 객차 3량을 10여 분 만에 집어삼키는 대형 화마로 커질 만큼 화재에 철저하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화재 직후 종합사령실과 전동차 기관사간 연락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데다 엉성한 화재 진압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결과 종합사령실은 기관사에게 화재를 알렸지만 기관사는 이를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철산역 측도 출발하는 전동차를 막지 못하고 일부 승객만 대피시킨 것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화재 초기였던 철산역에서 승객을 빼내고 불길을 잡았더라면 큰 사고를쉽게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번 사고는 ‘사고발생-상황보고와 현장대처-대피 안내방송-출구 유도’라는 기본적인 화재시 조치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지하철 역무원 조차 평소 비상시 훈련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하철 화재처럼 돌발적인 사고를 사전에 물샐 틈 없이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시민과 관련 기관의 숙련되고 침착한 위기관리 훈련이 절실한 때라고 지적했다.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 용의자는 사건발생 45일 만인 2월 17일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A(50)씨는 설비담당일을 하다 1996년 국제통화기금(IMF)때문에 실직한 뒤 이듬해 주식투자 실패로 2억 원의 빚을 지는 등 최근까지 생활고에 시달려왔으며 과대망상증 때문에 97년에 수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A씨는 2004년 말 모 아파트 설비담당 직원으로 취직하려다 실패하자 자살을 결심하고 사건 당일 새벽 집에서 시너가 담긴 플라스틱통과 2차 방화를 위해 준비한 오토바이용 휘발류가 담긴 우우팩을 갖고 집을 나와 집 근처 보라매역에서 온수행 전동차에 탔다.
이어 A씨는 7번째 객차에서 광고전단지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으며 객차에 있던 승객 9명가량이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철산역에서 내린 뒤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 관악산에 가서 땅을 파고 자살하려다 집에 돌아갔으며 이후 집에서 은둔생활을 해왔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결심했고 지하철에 불질러 자살하면 내 흔적(뼈)조차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승객이 별로 없는 7호선을 택했다”며 “객차를 왔다갔다 하다 사람이 제일 없는 7번째 객차를 골라 불을 질렀고 불을 내면 (승객들이) 모두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