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재벌총수들에 대한 무더기 호출이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내달 10일부터 시작하는 국감을 앞두고 여야는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 문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태 등을 이유로 각 상임위별로 주요 그룹 총수들을 무더기로 증인 신청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4대그룹 총수는 물론 네이버·카카오 등 주요 빅테크 기업 창업자들이 그 대상이다.
국감은 국회가 정부를 대상으로 국정을 감시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인들의 증언이나 의견을 듣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이를 위한 기업인들의 소환과 증인채택이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 차원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도입 이후 여야는 기금출연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매년 습관적으로 대기업 총수나 오너를 증인으로 불러내고 있다. 지난해 국회 환노위의 한 의원은 대기업 총수만 26명을 증인으로 채택,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감장에서 기업인을 대하는 의원들의 태도도 고압적이다. 사실관계나 의견의 청취보다는 카메라를 의식해 훈계하고 호통치는 정치 쇼로 일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불려나온 총수나 기업인 대다수가 답변 시간 5분이 채 안 되고 일부는 자리만 지키다 돌아가곤 한다. 그럼에도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의 악습이 되풀이되면서 17대 국회에선 기업인 증인채택이 연평균 52명이었지만 18대 77명, 19대 125명, 20대 159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200명을 넘었고 올해도 작년 수준을 웃돌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감이 기업인 군기 잡기의 장으로 변질된 건 유감이다.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부르고 벌세우기하듯 갑질하는 이런 국감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관행이 되다시피 한 이런 구태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면 사문화된 ‘국정감사 증인신청 실명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은 2017년 국감에서 증인신청 의원의 이름과 사유를 명확히 밝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사유서를 상임위에만 제출하면 되기 때문인데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선 규정을 완화해 대외적으로도 투명히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