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는 있는 성 중립 화장실...국내 도입 활성화될까

"밖에서는 물을 안 마셔요"... 공중 화장실 '못' 가는 사람들
화장실은 문화 수준 반영...문턱 가장 낮은 곳 돼야
美 백악관 등 외국은 성중립 화장실 보편화
전문가 "불법 촬영 우려엔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해야"
  • 등록 2021-06-14 오전 12:30:29

    수정 2022-01-21 오전 9:23:27

“밖에서는 물을 안 마셔요.”

트랜스젠더 활동가 '꼬꼬'(활동명)는 실외활동 중 화장실 사용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밖에서 부득이하게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지하철역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한다"며 "장애인 화장실은 1인용으로 만들어져 독립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화장실은 사회의 문화 수준 반영"...문턱이 가장 낮은 곳 돼야

화장실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김지학 소장은 "화장실 이용상황을 보면 그 사회가 누구를 포용하고 배제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에는 흑인 여성 수학자 캐서린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왕복 1.6km를 뛰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는 인종 분리 정책에 따라 백인과 같은 화장실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제2·4·5·6·7대 국회의원을 지낸 여성 정치인 박순천 전 의원이 활동하던 시기, 국회에 여성화장실이 없어 방광염을 앓았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9%(231명)가 화장실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음료를 마시지 않거나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36%(212명)는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꼬꼬 활동가 역시 트랜스젠더들이 토로하는 애로사항에 ‘방광염’이 빠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같은 화장실 사용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대학에서 일어났다.

성공회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5일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하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의결했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2017년에도 같은 논의가 있었으나 학내 반대로 설치가 무산됐다. 확정되면 국내 대학 중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는 첫 사례가 된다.

경기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 있는 모두의화장실(사진=한국다양성연구소)


'성 중립 화장실'로도 불리는 ‘모두의 화장실’은 화장실마다 독립된 잠금장치와 세면대, 양변기를 갖추고 있다. 화장실 이용 시 동행자가 필요한 장애인, 노약자, 아이를 동반한 가족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형태다.

모두의 화장실은 소변기와 좌변기를 모두 설치해 남녀 화장실을 합쳐놓은 공용화장실과 달리 처음부터 성별, 장애, 동반자 유무에 따른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따라서 화장실 안에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남녀가 동시에 용변을 봐야 하거나 낯선 이성을 조우할 일은 없다.

영국의 한 공중화장실(사진=한국다양성연구소)


해외선 설치까지 활발...美 백악관에도 설치

해외에서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0년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CSU롱비치) 화장실에서 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한 뒤 성 중립적인 화장실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 지시로 백악관 내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한 후 여러 주에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 법안을 발의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17년 업무용 빌딩과 공공기관 건물을 포함한 모든 1인용 공공화장실에 ‘성 중립’ 표지판을 의무적으로 달게 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산하 서머빌 칼리지도 2018년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대형병원 중에서는 서울 강동구의 강동성심병원이 6월 중순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불법 촬영 우려엔 “성범죄 처벌 강화 등 근본적인 해결이 더 중요”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이라는 특징 때문에 불법 촬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예고한 성공회대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 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재학생 5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중 52%가 모두의화장실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불법 촬영 문제를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우려를 표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폐쇄적인 구조를 지적하며 "(카메라 설치 등) 범죄 구성이 더 쉬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불법 촬영을 우려하는 상황이 근거 없지는 않다"며 불법 촬영 범죄가 성행하는 실태를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불법촬영 문제가 모두의 화장실과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입장도 있었다.

성공회대 학생 A씨는 “교내에서 (모두의화장실 설치에 관해) 주로 제기되는 문제는 학생회의 ‘절차상 문제’"라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불법촬영 우려에 대해서는 "성별이 분리된 화장실에서도 불법 촬영은 이뤄진다"며 "이는 모두의화장실의 문제가 아니라 포괄적으로 고민할 문제"라고 답했다.

A씨는 이어 성소수자·불법 촬영 등 민감한 문제로만 모두의 화장실 논의가 다뤄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오늘날 고속도로 휴게소에 보편적인 '가족 화장실'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성별이 구분된 지금의 화장실은 안전한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증가하는 성범죄는 왜곡된 성의식, 약한 처벌과 연관성이 있다"며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게 (불법 촬영 등 성범죄를 예방하는 데) 중요하다"고 답했다.

김 소장은 "화장실 사용은 외부 활동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며 "지금의 화장실 사용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외부 활동에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두의 화장실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화장실이라는 점에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순정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모두의화장실은) 장단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범사업으로 (장단점을) 충분히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이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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