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6년 5월9일. 광주광역시에 있는 한 파출소에 근심 어린 표정의 70대 여성이 들어섰다. 여성은 연인이던 70대 남성 A씨가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하다고 했다. 황혼에 시작한 연애인지라 서로 안부를 묻는 게 연인의 주된 일상이었다. 그런데 전날부터 연락이 끊기자, 께름칙한 여성이 경찰을 찾아간 것이다.
| 남매 가운데 누나가 경찰에서 조사받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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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A씨는 그날 오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마치 원한을 사서 보복을 당한 듯했다. 나아가 시신을 커다란 고무용기에 담겨 이불로 덮여 있었다. 락스로 범벅된 채였다. 부패한 시신에서 나는 냄새를 감춰 발각되는 걸 늦추려는 시도로 보였다.
폐쇄회로 티브이를 돌려보니 범행은 전날 5월8일 이뤄졌다. 범인 두 사람은 이틀 동안 A씨 아파트를 드나들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이틀 만에 붙잡힌 이들은 A씨의 아들과 딸이었다. 어버이날에 남매가 자기들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가족의 비극은 A씨의 부인이 2004년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A씨가 부인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 간에 불화가 이어졌다. 그러자 남매는 모친의 보험금을 탄 A씨에게 분할을 요구했으나 다툼만 커졌을 뿐이었다. 남매는 2010년 1월 A씨를 가정폭력 혐의로 신고하고 모친을 자기들 집으로 데려갔다.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A씨는 따라가지 못했다.
가족 간에 왕래가 끊긴 건 남매의 모친이 2011년 숨진 이후부터였다. A씨는 사별한 부인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었다.
그러던 남매가 2016년 3월께 A씨를 불쑥 찾아갔다. A씨 소유의 아파트 지분을 나눠달라고 간 것이다. A씨는 앞서 경찰을 찾아간 자신을 찾던 70대 여성과 황혼 연애를 시작한 뒤였다. 앞으로 A씨가 세상을 떠나면 재산은 이 여성에게 상속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재산을 미리 증여하라는 게 남매의 요구였다. A씨 재산은 명의로 가진 아파트 정도였고, 당시 평가액은 1억 원 남짓에 불과했다. 요구를 거부한 A씨는 수달 후에 남매 손에 살해됐다.
어버이날에,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남매의 패륜에 사회는 경악했다. 두 사람은 존속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남매는 재판에서 유년기부터 이어온 부친의 가정폭력이 범행 동기라고 했다. 모친도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했다. 보험금을 받아간 A씨는 모친을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고 했다. A씨가 숨을 거둔 상황에서 사실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다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범행 자체를 합리화할 수는 없었다.
| 남매 중에 남동생이 경찰에서 조사받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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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남매는 범행은 우발적이라고 했다. 당일 남동생은 부친에게 누나를 성폭행한 사실을 따지자, 부친이 남동생을 공격했고,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사달이 난 것이라고 했다. 재판에서도 이 부분이 쟁점이 됐다. 그러면서 범행은 남동생 단독 소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성폭행은 사실로 밝혀지지 못했다. 외려 행적을 보면 살해는 계획에 가까워 보였다. 남매는 범행 전에 외국행 항공기 티켓을 찾아봤다. 표백제를 검색한 이력도 있었는데, 실제로 범행 현장에 락스가 발견됐다.
법원은 남동생에게 징역 20년을, 누나에게 징역 18년을 각각 선고했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