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타살”…발달장애 딸 살해한 ‘암 투병’ 친모, 2심도 중형 [그해 오늘]

생활고 겪던 중 말기 암 진단받고 우울증 증세 보여
‘딸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 생각에 범행
法 “잘못된 판단에 범행…피해자 고통 가늠 어려워”
시민단체 “국가, 개인에게만 발달장애인 책임 전가”
  • 등록 2024-10-02 오전 12:00:00

    수정 2024-10-02 오전 12:00:00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22년 10월 2일 수원고법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에게 1심과 같은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 여성 측이 중형을 선고한 원심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한 것이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친딸을 살해한 50대 친모에게 재차 중형이 내려진 날이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약물 섞인 음료 먹인 뒤 살해…범행 이튿날 자수

같은 해 3월 3일 경찰에는 “내가 딸을 죽였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50대 A씨가 경기 시흥시 자택에서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딸 B(당시 22세)씨를 살해하고 5시간여 만에 자수한 것이었다. 현장에서는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를 만나거라’는 등 내용이 담긴 A씨의 메시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딸을 키워온 그는 어떻게 범행하기에 이른 것일까.

사건이 발생한 날은 3월 2일이었다. A씨는 어머니의 자택에서 챙겨온 수면제 등을 음료와 섞어 B씨에게 마시도록 한 뒤 딸이 정신을 잃은 틈을 타 범행했다. 차량에서 딸을 살해하려 했지만 B씨가 잠들지 않자 집에 데려와 한 차례 더 수면제 등이 담긴 꿀물을 먹이고 질식사로 숨지게 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 A씨는 딸과 생활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와중 말기 암 진단까지 받자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사망하면 ‘딸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2개월여 전부터 약물을 미리 가져오는 등 준비를 한 것이었다.

실제로 A씨는 거동이 불편해 별다른 경제 활동을 하지 못했으며 기초생활수급비와 B씨 앞으로 나오는 장애인 수당, B씨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B씨는 중증 지적장애가 있었음에도 밥을 먹고 씻는 것은 홀로 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는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주변인의 도움은 필요로 했지만 2018년부터는 홀로 대중교통을 타고 안양에 있는 장애인 취업시설에서 일하며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법정서 “딸과 같이 가려고 했는데…제가 죄인”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는 법정에서 “딸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 순간 제 몸에서 악마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며 “어떠한 죄를 물어도 달게 받을 것”이라며 범행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제 딸과 같이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제가 살아 법정 안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며 “제가 죄인”이라고도 했다.

검찰은 “우울증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숨지려 한 점은 참작 사유지만 무고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갑상샘 기능 저하와 우울증으로 잘못된 판단 아래 범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고인의 사랑과 스스로의 각고의 노력 끝에 홀로 버스를 타고 장애인 시설로 출근해 월 100만원 소득을 벌 정도로 성장했으며 또래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며 “피해자가 갑작스럽게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사랑했을 피고인 손에 삶을 마감했으며 그 과정에서 겪었을 피해자의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한 A씨 측과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의 형량을 변경할 만한 양형의 조건 변화가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후 A씨 측이 상고하지 않으며 형이 확정됐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2022년 6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같은 해 A씨를 비롯한 일부 부모들이 장애를 가진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비극적 죽음은 매년 여러 번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국가와 지자체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책임과 지원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한 채 뒷짐만 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법에도 명시된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여전히 많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이는 국가와 지자체의 직무유기로 발생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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