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 3분 진료의 진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2-04-02 오전 12:03:29

    수정 2022-04-02 오전 12:03:29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5년 전 류마티스 열에 의한 승모판협착증과 대동맥판막협착증으로 두 개의 판막을 기계판막으로 치환하고, 기계 판막이 막히지 않도록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던 60세 김 모 씨는 첫 눈에 보기에도 매우 멋도 잘 내고, 예쁘신 분이었다. 와파린 수치를 맞추기 위해 정기적으로 피 검사를 해야만 했고, 타 병원에서 수술을 한 이후 이사를 하면서 심장전문병원인 본원을 찾아오게 됐다.

와파린 수치는 INR이라는 피검사 결과로 알 수 있는데, 정상인이 1이라면 와파린을 복용하는 환자는 INR 수치가 높게 유지 되도록 해야 하므로 2~3 정도를 유지해야 한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다. 그 이하일 경우 기계 판막에 혈전이 잘 생기게 되고, 그 이상일 경우는 혈액 응고가 잘되지 않으면서 출혈이 생길 수 있어 정기적으로 피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처음 본원을 방문하여 혈액 응고 검사를 기다리던 환자는 들어오자마자 입을 삐쭉이신다. 와파린 수치 검사를 하러 왔는데,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걸리게 되었다고, 교수님 환자가 왜 이리 많으냐고, 뒤에 일이 있는데 기다리게 되어서 늦어졌다고 불평을 하신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와파린 수치인 INR 은 2.3으로 잘 조절되고 있네요. x-ray도 특별한 건 없으신데, 심전도에서 심장이 조금 큰 것처럼 보입니다. 청진 소리는 좋고, 타 병원에서의 마지막 심장 초음파가 2년 전이시네요” 가져오신 심장초음파를 열어서 2년 전에 시행한 결과를 보여 드리고, 현재 기계판막의 위치를 보여드렸다. 그리고는 약을 드시면서 주의점들을 설명하고, 처음이라 다른 질환은 없으셨는지, 폐경이라 골다공증 검사를 한 적이 있는지, 위·장내시경 등은 해보신 적이 있는지 꼼꼼히 묻고 보내드렸다.

처음 기다림에 불만이셨던 환자분은 당신의 심장 초음파는 처음 보았다며, 이제껏 교수님들이 컴퓨터만 보고 있었는데, 자신의 눈을 바라봐 주고, 와파린 설명을 들어서 잘 이해가 되고 좋았다고 하신다. 멋도 잘 내고, 성격도 쾌활한 환자분은 처음에는 불평이셨지만 몇 번 외래를 방문한 후, 환자와 의사와의 좋은 관계가 형성돼 외래를 잘 다니게 되셨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필자에게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타 병원에서 수년간 와파린만 복용하고,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혈압을 재보니 약간 높았고, 가족들 중에 아버지가 심근경색을 앓았으며, 언니는 유방암을 앓아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최근 들어 약간의 호흡곤란이 있었지만 심하지 않아 지켜보았고, 가슴 통증은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심하지 않았는데, 누르면 약간 아팠다고 한다. 이전 병원에서는 심장내과를 다녔고, 수술도 했으니 별문제 없다고만 생각했고 외래도 너무 환자가 많고 교수님도 좋다고만 하셔서 별로 묻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외래에서는 아직 환자, 의사와의 관계가 성립되기 전이라 우선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혈압이 다소 높은 것으로 생각되니 집에서 혈압을 재서 가져오시도록 했고, 최근 2년간 고지혈증 등 다른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고, 가족 중 심근경색의 가족력이 있으니 고지혈증 검사를 추천했으며, 폐경으로 골다공증 검사와 유방암의 가족력으로 산부인과와 유방검사를 받아볼 것을 추천드렸다.

호흡곤란이 다소 발생하는 것은 판막 이외에 혈압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돼 와파린 외에 혈압약을 쓰면서 한 달 후에 고지혈증 검사들을 포함해 검사 후 외래에서 다시 뵙도록 했다. 환자는 3~6개월에 한 번씩 외래를 다녔는데, 한 달 후 오는 것에 불만이었으나 자세히 설명을 듣고, 집도 멀지 않아 우선 수긍하고 돌아가셨다. 정기 내원일에 환자를 뵈었을 때, 집에서 처음 혈압을 재니 높았는데 약을 복용하면서 일주일 정도부터 점점 혈압이 감소했고, 호흡곤란도 좋아졌다고 좋아하셨다. 아울러 피 검사상 심한 고지혈증이 있고, 골다공증이 심하게 있어서 추가적인 약물을 처방하고,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도록 권고 드렸다.

처음에는 오래 기다리고, 무슨 검사도 이렇게 많이 하느냐고 불평하시던 환자분이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약제 조정을 하면서 증상도 많이 좋아지게 되어 이제는 오실 때마다 오히려 식사는 하셨냐며 필자를 걱정하고 웃으며 외래를 나선다. 심장내과를 다니고 있었으니 당연히 심장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지혈증도 혈압도 사실 잘 조절이 안되고 있던 분이었다. 환자는 피 검사상 ALP라는 수치도 다소 높았고, 혈압 조절을 해도 가슴의 흉통이 남아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심장 문제는 아니고 근골격계 문제로 생각이 되었기에 유방초음파를 권고드렸고, 유방암도 발견되어 유방 절제술과 항암치료도 함께 진행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드렸다.

필자가 심장내과 수련을 받던 시절 한 교수님의 외래를 들어간 적이 있다. 오전 8시 45분에서 오후 12시 반까지 오전 외래가 잡혀 있는데 4시간 동안 100명의 환자를 보셔야 했는데 환자들 중에서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약만 받아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4시간 동안 100명의 환자를 보기 위해서는 1시간 내로 25명의 환자를 보아야 하고, 한 환자당 3분 이내의 시간에 면담을 하고 오더를 넣어야 한다.

외부 병원에서 명의를 찾아서 한 더미 차트를 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으나 x-ray를 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의사도 사람인데 그 환자들의 모든 면을 다 파악할 수 있을가. 장기가 심장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심장도 판막, 근육, 혈관, 전도계 등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부분의 전문 분야 선생님들이 최고라 하더라도 절대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필자의 경우에도 환자를 꼼꼼히 살피고 최대한 환자가 병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드리려 하지만 1시간 넘게 기다리는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밖에서 간호사님들께 소리를 치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 자신도 마음이 매우 급해진다. 게다가 환자는 한 질환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인지라 각각이 다른 병에 같은 병이어도 나이와 성별, 다른 기저질환들이 달라 다 개별화해야 하는데, 3분 내에 다 파악이 될까. 의사도 사람이고 많은 환자들을 짧은 시간에 상대하다 보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이상 놓치게 되는 것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다른 과로 보내고 왜 보내야 하는지 설명할 시간조차 부족해진다.

필자가 미국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메이요클리닉에 연수를 다녀왔을 때의 경험을 보면 의사로서 여러 가지로 부러운 측면이 많이 있었다. 환자 한 사람의 진료 시간이 30분을 넘기고, 하루에 보는 환자 수는 10명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 측면에서는 반드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래를 한번 예약하기 위해서는 몇 달이 넘게 걸리고, 심장내과 전문의를 보기 위해서는 일반 의사를 보고, 내과 전문의를 보고, 이후에 심장내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일반 의사에게 사는 곳이며, 아픈 곳들을 이야기하고, 정말 필자가 생각할 때는 내 시간이 아까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우리나라 돈으로 30만 원 정도였고, 이후 전문의를 보는데 50만 원이 들었다. 약을 처방받고 처치를 받는데 또 100만 원이 들어서 메이요에 근무해 충당되는 보험이 아니었다면 그 비용들을 다 감당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백신을 하나 맞는데도 백신 비용이 30만 원씩이 들었기 때문에 비용적인 측면, 시간적인 측면은 환자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개인 사보험이 있고, 보험회사마다 병원이나 혹은 진료에 대한 환급이 다르기 때문에 복잡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에서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하여 환자들은 비교적 저렴하게 진료를 볼 수 있지만 마치 박리다매처럼 환자 수를 늘려야 병원에 수익이 창조될 수 있고, 이에 따라 3분 동안 외래환자를 봐야 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게 된다. 아울러 명의를 찾아 나선다고 3차 병원들에 단순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환자들도 외래로 밀고 들어오게 되어 다른 환자들 입장에서는 수 시간을 기다려 5분 이내의 진료를 보고 나가게 될 수밖에 없다.

필자의 경우도 오전 외래를 보게 되면 아침부터 오후까지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점심은 거의 먹지 않고 일하지만 늘 외래는 밀린다. 뒤 환자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죄송한 마음이 드는데도 그럼에도 혹여나 놓치는 게 있을까 봐 밤에도 필요한 환자들에게 전화 연락을 할 수 밖에 없다. 또 상대적으로 많은 건강보험료를 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막상 진료를 보는 입장에서는 행정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숙지는 하지 못하여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해외여행을 매우 자주 다니시는 분이 의료급여로 건강 보험료는 전혀 내지 않고 병원에 다니시는 경우들도 있고, 해외에 거주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우리나라 건강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싸니 해외에 거주하다가 몇 년치 보험료를 내고, 검사들을 받는 경우들도 본다. 이 때문에 보험료가 정말 효율적으로,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건 전적으로 개인의견이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곳에서 노력하시는 분들이 행여나 마음이 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모든 행정 절차들 혹은 사회의 일들이 한 개인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고, 각 국가별로 저마다의 의료보험과 체계가 있고 장단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가장 최적의 진료를 위해 각 개인은 자신의 병을 잘 알고, 먹는 약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고, 시간에 쫓기면서 진료를 보는 의사를 위해 평소에 궁금한 것들은 적어서 외래에서 이야기를 하고, 이전과 다른 점은 의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또한, 비교적 간단한 진료는 거주지로부터 가까운, 접근이 쉬운 병·의원에서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적인 근거에 접근한 정보를 취하고, 의사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더라, ~가 좋다더라 하는 카더라 정보에 현혹돼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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