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코딩 잡부? ‘코딩 열풍’ 이면 들여다보니

개발 직군 채용 확대·문과 취업난에 비전공생 진입↑
각종 민간·공공 코딩 교육기관 인기
적성 파악 없이 환상만으로 지원하면 ‘롱런’ 어려워
전문가 “문·이과 아닌 사고 방법론 따져 살펴봐야”
  • 등록 2021-06-07 오전 12:35:35

    수정 2022-01-21 오전 9:44:52

"무조건 간다! 네카라쿠배”, “비전공자도 OK!”

‘코딩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열풍의 중심에는 소프트웨어·컴퓨터공학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은 비(非)전공자가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 IT(정보기술) 기업의 개발자 채용 규모가 늘어난 까닭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개발자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감으로 소위 ‘코딩 잡부’가 대거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전공자가 적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채 높은 보상만을 노려 개발 직군에 지원할 경우 중장기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도태되기 쉬워서다.

IT 업계에서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로 불리는 일부 IT 대기업의 파격적인 근무 조건이 빚어낸 환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비전공 출신 개발자들은 자기 객관화를 통한 적성 파악과 끈기가 필요하다고 조언을 건넸다.

(사진=코드스테이츠 제공)


신입이 억대 연봉? 일부 기업 파격 조건으로 개발 직군 인기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비전공자의 발걸음을 코딩 교육 기관으로 이끌었다. 비대면 서비스와 플랫폼이 활성화하며 IT 전문 인력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거대 IT 기업들은 올해 초 연봉을 큰 폭으로 인상하며 ‘개발자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지난 2월 이후 넥슨·넷마블·컴투스·크래프톤 등 게임개발회사들이 재직자 및 개발자 연봉 인상을 선언했다.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 업계도 대규모 공채 계획과 스톡옵션 제공을 발표하며 파격 행보를 보였다. 직방 등 후발 스타트업도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코로나19로 공채가 줄어들며 대기업 사무직 등 문과생들이 희망하던 취업문이 좁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 결과에 따르면 지난 4월 2030세대 대학생·구직자 752명 중 59.6%가 ‘기회가 있다면 코딩을 배우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 중 문과 전공생이 63.8%를 차지했다.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는 2016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전체 과정 중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수강생 비율이 86%에 달한다고 밝혔다. 올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코스’에는 88%의 비전공자가 몰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민간뿐 아니라 ‘SW마에스트로’, ‘42서울’ 등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국비 지원 교육 프로그램도 인기다. 대학 내 코딩 동아리에도 전공을 불문하고 신입생과 복학생이 몰리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네카라쿠배가 환상 키웠지만...업계 적성 적합도 1년 내 결정 난다

일각에서는 비전공자들 사이의 코딩 열풍에 대해 "능력 있는 개발자가 아닌 단순 코딩 작업을 반복하는 코더(coder) 양산일 뿐", "결국 오래 근무하지 못할 것" 등과 같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업계와 직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고연봉만 바라보고 지원하는 인원이 늘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 들어서다.

현직 개발자들 또한 “환상만으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소수 IT 대기업을 제외하곤 고연봉과 양질의 복지가 보장되지 않아서다. 오히려 잦은 야근 등 업무 강도가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IT 업계 한 개발자는 "'네카라쿠배'로 인해 개발자에 대한 환상이 있지만 그곳을 갈 수 있는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밥 먹듯이 야근을 하는 등 아직까지도 개발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개발직군이 주목을 받으면서 (비전공자 지원이 늘어나는 등) 인력 풀(pool)이 넓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면서도 "비전공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5년차 전공자 출신 개발자는 “국비 지원 교육을 20명이 함께 수강했는데 1년 후 개발직군에 종사하는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며 "(고연봉 등의 환상을 갖고 들어온) 그런 사람들은 아예 버티지 못한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이어 "결국 재미를 느끼고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남는다"며 "비전공 개발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은 허점이 있다. 대부분 성과를 내는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중도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비전공 개발자 개발 직무 이해와 자기 객관화 선행해야

실제 비전공 출신 저연차 개발자들은 ‘오래 일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전공 여부보다는 개인 역량이 더 중요하다”면서도 “개발 직군에 지원하기 전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업문을 통과하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끈기와 근면함을 필수 요소로 뽑았다.

김준환(가명·31)씨는 문과 단일 전공으로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한 뒤 올해 대기업 개발 직군에 합격했다. 김씨는 “(비전공 준비생들은) 상대적으로 개발 경험이 적기 때문에 직무에 대한 자가 검증이 부족하다”며 “스스로 개발 직군에 종사할 만큼 우수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성향이 적합한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특히 인문계 취업 준비생은 취업난이 심각해 단순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개발자를 희망하기도 한다”며 “그 중 개발 역량이 부족하거나 적성이 맞지 않아 도태되는 경우가 있다. ‘중도 이탈’이라는 비전공 개발자의 오명은 여기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씨는 “고연봉에 대한 단순한 동경이나 ‘인문계열 전공 취업보다는 쉽다’는 짧은 생각으로 개발자를 지망해선 안 된다”며 “이 직업이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지 충분한 자기 객관화와 고민을 선행한 후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공 여부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어떻게 키우는지에 따라 ‘롱런’이 달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

비전공 출신 3년차 개발자 이지수(가명·25)씨는 “전공자가 개발에 흥미가 없어 오래 근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비전공자여도 꾸준히 공부해 높은 수준의 개발자가 되기도 한다”며 “IT 업계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끈기가 필수이므로 결국 개발 자체에 대한 흥미가 있어야 버틸 수 있다”고 전했다.

1년차 개발자 허모(26·여)씨도 “개발자는 알고리즘을 논리적으로 설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일부 편견과 달리 이공계생보다 문과생이 더 잘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 “‘비전공자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사고 방법론 중요하다

백종호 서울여대 소프트웨어융합학과 교수는 비전공자 코딩 열풍에 대해 “소프트웨어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생도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분야 지식)에 강점이 있어 개발자로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메인 지식은 ‘주어진 문제 영역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뜻한다.

조용범 건국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전산은 왕도가 없다”며 “코더(coder) 단계에선 무조건 프로그램을 직접 많이 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연차 비전공 개발자를 향한 조언을 건넸다.

조 교수는 "남는 시간엔 전산학과에서 다루는 알고리즘·데이터베이스 관련 책을 공부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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