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소정 기자]
우리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을 먹지 않습니다. 은행 달력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믿고요.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진 속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속설들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고 우리가 왜 믿어야 하는지를요. 김 기자의 ‘속살’(속설을 살펴보는)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장어 전문 식당에 가면 암묵적인 룰이 있다. 여자는 잘 익은 꼬리를 남자에게 준다.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먹는다. 때론 직접 꼬리를 골라 먹기도 한다.
| (사진=이데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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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장어 꼬리가 남성 정력에 좋다는 속설 때문이다. 지난 2016년 TV조선 ‘내 몸 사용설명서’에 출연한 방송인 설수현 씨는 “남편과 감정이 안 좋을 때도 왠지 (장어) 꼬리는 자꾸 넘겨주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장어의 꼬리는 남자의 전유물이 됐다.
사람들은 왜 장어 꼬리가 정력에 좋다고 믿을까. 2016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는 재미있는 레이스가 펼쳐졌다. 생선 달리기 시합이다. 시장 상인들은 꼬리 힘이 센 생선으로 숭어, 우럭, 장어를 꼽았다. 특히 숭어는 점프력이 좋기로 유명하다. 수십마리가 떼를 지어 물 위를 솟아오른다. 우럭 역시 힘 좋고 빠른 생선 중 하나다. 장어는 ‘잡기대회’가 있을 정도로 힘이 세 잡기가 어렵다.
| (사진= KBS2 ‘생생정보통’ 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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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 위 출발지점에서 결승지점까지 어떤 생선이 얼마나 빨리 도착하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1번 주자 우럭은 출발하자마자 달려가나 싶더니 중간 지점에서 ‘픽’하고 드러누웠다. 숭어는 출발조차 못했다. 마지막 주자 장어는 출발선에 내려놓기 무섭게 도착지점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한 꼬리 힘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장어 꼬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희소성이다. 장어 한 마리에 꼬리는 한토막 나온다. 우리는 한정판에 열광하는 심리와 궤를 같이 한다. 또 장어는 몸이 잘려도 꼬리가 움직인다. 생명력이 끈질긴 ‘파닥파닥’ 꼬리를 먹으면 내 몸도 강해질 거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정말 장어 꼬리가 몸통보다 영양소가 더 풍부할까? | (사진= MBN ‘천기누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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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이다. 장어 꼬리와 몸통은 영양소 측면에서 별 차이 없다. 조영제 부경대학교 식품공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장어 몸통이 꼬리보다 단백질과 비타민A를 더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몸통이든 꼬리든 부위에 상관없이 먹으면 된다.
장어는 남성에게만 특별한 음식일까?
물론 장어는 남성에게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장어=정력’ 법칙은 없다.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도 2017년 1월 SBS ‘3대천왕’에서 남성 정력에 장어 꼬리가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스탠탑비뇨의학과의 윤장호 비뇨기과 전문의도 “장어 꼬리가 특별히 남자에게만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사진= SBS ‘백종원의 3대천왕’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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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장어를 보양식으로 인식한다.
장어는 고단백질 식품으로 다른 생선에 비해 비타민A, 칼슘, 철분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단백질과 비타민은 원기회복에 좋다. 특히 장어는 육류의 기름기와는 다른 고급 불포화지방산을 갖고 있다. 불포화지방산은 면역력을 강화시켜주며 콜레스테롤 축적을 막아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 콜라겐도 많아 세포재생에도 좋다. 장점이 많은 생선이다.
정약용의 형인 조선후기 실학사상가 정약전이 집필한 어류학서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장어는 맛이 달콤해 사람에게 이롭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고기로 죽을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고 적혀있다. 동의보감에도 장어는 오장육부의 허약함을 보강하고 폐결핵을 다스리는 식재료로 기록돼 있다. 그냥 장어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은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