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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내뱉은 이 발언에서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통령이 앞장서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5년 임기동안 헛심만 쓰다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과 선긋기에 나섰고, 규제개혁도 ‘리셋’됐다. 그랬던 게 20년이다.
고도 성장 끝나자 천덕꾸러기로
규제 개혁·개선이란 말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벌써 36년 전이다. 1970년대 국가 주도의 산업화로 경제는 고속 성장했지만.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각종 규제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경제 덩치가 커지자, 규제 중심의 정책이 몸에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성장발전저해요인개선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는 노태우정부 시절 1988년 민관합동경제법령정비협의회, 1990년 행정규제완화위원회 등으로 이어졌지만, 규제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지 않아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그러다 김영상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행정쇄신위원회가 설치되고, 행정규제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규제 개혁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자발적인 개혁 의지가 크지는 않았다. ‘세계화’를 모토로 국내 시장을 개방하자, 과도한 규제로 인한 무역 마찰이 빗발치면서 등떠밀리듯 추진됐던 개혁이기 때문이다.
규제개혁 칼 빼든 DJ
‘규제 50% 폐지’를 목표로 내세운 국민의정부는 각 부처별로 일정비율 이상의 등록규제 감축 의무를 할당하는가 하면, 규제 개혁 실적과 장관 평가를 연동하는 등 규제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본격 추진했다. 이에 집권초인 1998년 1만327개에 달했던 규제 수는 집권 3년차인 2000년 6912개로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임기 마지막해였던 2002년에는 다시 규제 수가 7546개로 증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규제개혁에 뚜렷한 성과를 냈던 시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총리 주재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신설하고, 민관합동 규제개혁 기획단을 설치하는 등 규제개혁에 힘을 실어줬다. 참여정부 출범 첫해 7827개(2003년)였던 규제 수는 집권 5년차(2007년말)에는 5114개로 대폭 감소했다. 하지만 규제총량제 도입으로 양적 감축에는 성공했지만, 법제화하지 못해 실효성은 없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MB정부 땐 규제 15% 늘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선언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일부 핵심규제를 손보는데 주력했다. 또 △규제일몰제 확대 △미등록규제 조사 등록 △규제정보시스템 구축 등 규제시스템도 정비했다. 하지만 거의 유명무실했다. 집권 2년차인 2009년 1만2905개였던 규제 수는 집권 5년차인 2012년에는 1만4889개로 오히려 15.3%나 증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가장 강한 의지를 갖고 규제개혁을 추진했던 인물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은 “규제개혁은 꿈까지 꿀 정도로 생각하고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거나 “쓸데없는 규제는 원수이자 암 덩어리이므로 사생결단하고 붙어야 한다”라며, 규제개혁을 외쳤다.
지지율 높은 文정부, 규제개혁 적기
창조경제연구회(KCERN)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등록 규제 수는 1998년 1만185건에서 2007년 5114건으로 감소됐다가, 2013년에는 1만5269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2015년에는 1만4688건으로 다소 줄었지만, 규제 수에 큰 폭의 변동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개혁이 오랫동안 국정 주요과제로 추진됐지만, 혁신기업의 창업은 아직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답답해 했다.
규제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가 규제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정부의 높은 지지율은 규제개혁에 따르는 오해와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한편,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혁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혁신성장이라는 개념으로 4차산업혁명의 아이콘인 일부 신산업 분야의 규제 개선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기초화장 없이 색조화장만 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면서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은 상위수준의 규제가 실제로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규제개혁추진체계는 아직도 김대중 정부시설 비상임기구로 도입한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스템에 대한 투자없이 규제개혁만을 외쳐서는 규제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한국규제학회장)는 “규제 개혁의 핵심은 민간부문에 혁신의 길을 터주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걸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던 규제 개혁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