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장사가 안 돼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주 가던 식당이 문을 닫기도 하고 동네 슈퍼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문을 닫을 때는 사전 예고를 합니다. 바겐 세일을 한다든지, `언제까지 영업합니다`라고 대문에 써 붙이기도 하죠. 헛걸음을 할 고객을 배려해서겠지요.
코로나19 틈으로 문을 닫는 곳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2009년 11월에 개설됐던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코스피200 야간 선물 시장입니다.
선물 투자자에겐 밤에 문을 닫는 동네 슈퍼 대신 새벽까지도 불을 밝히는 편의점 역할을 해왔던 곳입니다. 새벽 편의점이 그렇듯이 ‘대박’을 치진 않아도 정규시장(오전 9시~오후 3시 30분)의 10% 가량(작년 일평균 1만9000계약, 1조3000억원)이 꾸준히 거래돼왔습니다. 우리나라 장이 끝나고 유럽, 미국시장이 순차적으로 열리는데 이때 이벤트가 발생했을 경우 투자자들은 코스피200 야간 선물 시장에서 매매해왔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는 좀 더 자주 들락날락할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운영돼왔던 이 시장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습니다. 한국거래소는 6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7일부터 코스피200 야간 선물 시장이 중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코스피200지수 내 삼성전자(005930) 비중은 작년 10월 중순부터 30%를 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석 달 중 45일간 특정 종목이 지수의 30%를 초과하면 3개월 유예기간을 주고 개선되는지 여부를 살펴보는데 코로나19에 주가가 빠지자 삼성전자 비중은 더 높아집니다. 결과적으로 유예기간까지도 삼성전자는 30%를 넘게 됩니다.
거래소, 3월말에야 코스피200 야간 선물 거래 불가 알아채
문제는 ‘소수집중형 지수’가 되면 지수 선물의 미 규제 관할권이 CFTC에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CFTC 공동 관할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상 힘이 더 센 ‘SEC를 따르라’입니다. 그렇다면 SEC 규정만 잘 숙지한다면 코스피200 선물을 야간에도 거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거래소 관계자는 “법 위반으로 소송 이슈에 휘말리고 시장 자체를 훼손하느니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투자자의 불편(야간 선물 거래 폐쇄)을 감수하는 결정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거래소는 언제쯤 이런 사실을 알게 됐을까요? 3월초 CFTC로부터 코스피200이 ‘소수집중형 지수’가 돼 SEC와 공동 관할에 들어간다고 통보 받은 후 3월 6일 회원사를 상대로 미국 국적 투자자의 코스피 200선물 거래가 제한될 수 있다는 유의사항을 배포합니다. 이때까지도 SEC규정에 따라 코스피200선물을 거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SEC관할이 된다는 것이 거래 불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3월 30일입니다. 거래소가 영문 홈페이지에 미국 국적 투자자 거래 유의 안내문을 올리고 나서입니다. 이것을 본 해외투자자가 미국 법규에 따라 코스피200 야간 선물 거래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고 4월 첫째 주까지 법률 자문을 통해 최종 의견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10년 넘게 운영됐던 코스피200 야간 선물 시장은 부랴부랴 문을 닫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특정 종목이 한 지수의 30%를 초과하는 선례가 한 번도 없었고 SEC 규정이 까다롭다고 해도 삼성전자가 30%를 넘어선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0년 넘게 익숙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에 대해 어떤 대비라고 하면 좋았을 것입니다. 삼성전자에 캡을 씌우지 않는 한 ‘어차피 벌어졌을 일’이라 해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