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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관리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약 50만명의 수험생이 응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대표적이다. 2010년 이후 최근까지 4차례 출제 오류가 발생했으며 올해에는 수능 성적표가 사전 유출되는 사고까지 터졌다. 교육계에서는 평가원에 대한 교육부의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0만명 응시하는 수능에서…있을 수 없는 일”
8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4일 공개 예정이었던 수능 성적이 일부 학생들에게 사전 유출되면서 수능 주관기관인 평가원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다. 박태훈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장(국민대 입학처장)은 “개별 대학에서도 지원자들의 입시 자료를 꺼내볼 땐 네트워크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며 “전국 50만명의 수험생이 응시하는 수능 주관 기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와 평가원에 따르면 평가원의 공식 발표를 앞두고 본인의 수능 성적을 미리 입수한 수험생은 312명이다. 이들은 지난 1일 오후 9시 56분부터 2일 오전 1시 32분까지, 3시간 36분간 평가원 홈페이지에서 성적 증명서를 사전 조회하고 출력했다. 공식 성적 발표일은 4일이었지만 이들은 2~3일 먼저 이를 확인했다.
확정된 수능 성적을 남들보다 먼저 입수하면 입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수시 모집의 수능최저학력기준(수능최저기준) 충족 여부를 파악, 입시전략을 세울 수 있어서다. 만약 수능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남은 대학별 고사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정시로 눈을 돌릴 수 있다. 반대로 수능최저기준을 충족한다면 수시모집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수 있다. 자신의 수능 성적을 알지 못하는 수험생들은 가채점 결과만으로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하기에 불안하다.
1년 전에도 보안관리 지적받은 평가원
평가원은 1년 전에도 관리부실 문제로 감사원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 평가원의 중등교원 임용시험 관리 실태를 감사한 뒤 “평가원의 온라인 시스템 전산 보안 관리가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지적을 받고도 1년간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셈이다. 이번 수능성적 유출도 일부 수험생들이 개발자 모드로 들어가 해당 연도 값을 `2020`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손쉽게 자신의 성적을 조회했다. 염동호 평가원 채점관리부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조사 결과 상시적으로 해당 취약점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그간 보안에 구멍이 뚫렸던 사실을 인정했다.
반복되는 시험관리 부실…관리·감독 강화 요구
교육계에선 평가원을 교육부 산하기관으로 이관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가원은 1998년 교육과정 연구와 각종 학력평가를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이다. 교육부는 매년 평가원에 177억원의 수능 관련 예산을 지원하지만 평가원을 감사하려면 총리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교육계 관계자는 “지난해 감사원으로부터 보안 문제를 지적받고도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내부적으로 기강이 해이하다는 얘기”라며 “교육부 산하기관으로 이관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이달 말까지 평가원으로부터 이번 성적 유출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제출받는다. 책임 소재를 가리고 관계자 문책 방안도 담길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가원의 자체 조사결과를 받아본 뒤 미흡하면 감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다음 달 평가원에 대한 감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