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한인식당을 운영하는 박모(26)씨는 최근 식당을 찾은 프랑스 손님마다 자신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묻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프랑스인들이 박씨를 중국인으로 오인해 ‘중국은 어떤 상태냐’ 등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이를 비롯해 일부 교민들은 이번 질병이 퍼진 이후 유럽 사회의 동양인에 대한 경계심이나 차별이 심해졌다고도 말했다.
이처럼 이번 질병으로 말미암아 유럽 사회에서 아시아계 전반이 인종차별적 조롱을 당하는 등 불편한 시선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일부에선 ‘반중(反中) 정서’가 감지되고 있으나 오히려 외국에선 우리 교민·유학생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태에 비이성적 공포로 인한 혐오를 계속하면 우리 역시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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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증 확산에…‘시노포비아’ 넘어 ‘아시안 포비아’ 퍼져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점차 확산하자 해당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에 대한 유럽 사회의 거부감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의 한 신문은 이번 질병을 다루면서 인종을 빗댄 ‘황색 경계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기관총을 쏘는 영상을 올린 뒤 “중국인을 보면 이렇게 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최초 등장한 프랑스에선 현지 언론에서도 우려할 정도로 동양인 차별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파리에 사는 최모(27)씨는 “최근 르몽드지에서 ‘동양인이 길에서 코를 풀고 있다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며 “기사에 등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확진자가 발생한 인근 독일에서도 동양인을 꺼리는 모습은 등장했다. 한 독일 커뮤니티엔 “평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도 하던 옆집 할머니와 집 앞 횡단보도에서 마주쳤지만, 평소와 다르게 모른 체하고 지나갔다”며 “이번 전염병 때문에 나를 무시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 올라왔다. 이 밖에도 한국 유학생들을 피하거나 일부러 거리를 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바이러스 공포는 본능…집단 전체 혐오는 지양해야”
시노포비아가 아시안포비아로 확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한국 내 반중정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7)씨는 “친구를 만나러 지난주 호주 시드니로 여행을 갔는데, 현지인들이 동양인이라면서 피해 다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시작됐다면 거꾸로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오해를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질병에 대한 공포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혐오나 차별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 일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서 안전을 위한 걱정은 이해할 만 하다”면서도 “위험 요소가 아닌 중국인 집단 전체를 향한 차별 언행은 대중이 두려워하는 해당 질병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럽 내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을 별개로 인식하지 않고 ‘동양인 집단’으로 묶어 배척하는 현상과, 한국 안에서 우한 출신이 아닌 중국인까지 모두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이성적인 공포로 특정 집단 전체를 혐오하다가 정작 우리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공포에 의한 혐오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면서 본인이 안전하다고 여기게 되면 무분별한 차별이나 증오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