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지급결제제도의 안전성 제고를 위한 한국은행법 개정 방향’ 웹세미나에선 이 같은 내용이 제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은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시장 환경, 지급 결제시장의 변화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금융 거래 증가, 전자금융거래 확대로 지급 결제 제도의 안전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은법을 개정해 목적 조항에 ‘지급결제 제도의 안전성과 효율성 도모’를 추가하고 ‘지급결제 제도 운영 및 관리 규정’을 한은법으로 상향 입법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시했다. 금결원 소액결제시스템에 참가하는 기관, 즉 금융회사, 핀테크 업체에 대한 자료 제출 요청권을 부여하고 금결원 및 참가기관에 대한 조사권, 제재권 등을 부과하는 방안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금결원을 전자지급거래청산업으로 지정, 조사 및 제재권까지 금융위원회가 가져가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금결원에 대한 금융위 감독권 신설은 한은의 감시권과 중복, 상충돼 청산 업무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지급 결제의 안전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최근 사모펀드 감독도 실패한 상황에서 지급결제까지 가져간다면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오히려 중앙은행의 지급결제 감시권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박기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페이업체) 등 디지털 금융으로 인해 변화가 있다고 해도 화폐와 지급결제의 본질적인 측면은 변화가 없다”며 “달라진 시장 환경에 대비한다고 해도 이미 한은이 안전장치(순이체한도제, 결제부족자금 공동분담제, 사전담보예치제 등)를 마련하고 있고 더 필요하다면 지급결제 제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은이 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지급결제는 지급, 결제, 청산의 세 단계로 이뤄지는데 빅테크 페이업체들은 지급의 변화이지, 결제의 변화가 아니란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이용자 입장에서도 ‘디지털’이라고 해서 화폐의 본질이 바뀌진 않는다”며 “카카오페이를 쓰면서 편리하다고 느낄 뿐이지, 화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준규 한은 법규실장은 “주요국 사례를 보면 정부가 지급결제시스템 운영기관(금결원)에 대한 제재권을 보유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대부분 중앙은행이 제재권과 업무 인·허가 등의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중국 왕롄의 사례를 들며 핀테크 내부 거래를 외부에 청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내부 거래가 아닌 핀테크와 상업은행 간 지급거래로 한정하고 있다는 게 민 실장의 설명이다. 한은이 작년 하나은행의 지급준비금 적립 의무 위반과 관련 과태금을 부과한 것에 대해 하나은행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한은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중앙은행도 제재권을 갖는 행정청에 해당, 감독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근거라고 민 실장은 설명했다.
한편 중앙은행의 전자화폐(CBDC) 발행과 관련해 한은법을 개정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고 교수는 “전자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한은법 개정(49조)이 필요하고 계좌 방식으로 발행한다면 계좌 보유자에게 직접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권리를 마련하는 방안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현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지급결제를 추구하는) 페이스북의 리브라 사례를 볼 때 한은이 전자화폐를 발행하면 민간이 전자화폐 등을 발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기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CBDC에 대해선 한은이 법적인 부분과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놓을 필요는 있지만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 14개국에선 지급결제 시스템 민간 독점 및 운영 리스크 방지, 화폐 제조 및 유통 비용 절감, 금융포용 제고 등을 위해 CBDC 발행을 추진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이유로 발행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