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표 뽑으면 200번대?”…운용사·자문사 등록 '하세월'

풍부한 시중자금에 운용·자문사 설립 붐
등록제인데 금감원 심사 담당 인력 5명 뿐
행정력 부족에 등록까지 최대 1년반 걸려
"시간 버리고 비용 들고"…피해 호소
  • 등록 2022-04-11 오후 10:10:47

    수정 2022-04-11 오후 10:10:47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투자자문사 설립 위한 번호표 뽑으면 200번을 넘어갈 겁니다. 지금 신청하면 내년 하반기에나 인가가 나올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동안 펀드 조성도 못하고 비용만 써야 하는 상황이에요.”

코로나19로 시중에 대거 자금이 풀린 덕에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 설립 수요가 몰리면서 신청 대기줄도 길어졌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등 공모주 투자열풍에 증거금 없이 손쉽게 공모주를 받을 수 있는 우회수단으로 투자자문사 설립이 각광받은 영향이 컸다.

다음 달부터 공모주 수요예측 참여 요건이 까다로워진 탓에 대기줄이 더 길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금융당국의 행정력이 따라주지 못해 번호표 소화하는 데 하세월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운용사와 자문사 설립을 위한 신고서류를 제출한 곳은 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는 당국으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야 하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청 후 결격 사유가 없으면 설립 가능한 등록제다.

문제는 운용사와 투자자문사 설립 수요가 늘면서 등록까지 대기시간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오랜기간 저금리 기조로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워낙 많아 운용하려는 수요가 있는데다, 자산가들이 집안 자금을 운영하기 위해 패밀리 오피스 설립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특히 최근 2년간 공모주 시장이 흥행하면서 공모주를 받기 위한 운용사 및 자문사 설립도 늘었다. 기관투자자는 수요예측을 할 때 증거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데다 자기자본 규모와 상관없이 공모주를 신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수요예측에 무려 1경5000조원이 몰릴 수 있었던 이유다.

이처럼 허수 청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요예측 참여 요건을 강화, 신규 운용사 및 자문사 설립 신청도 속도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규 등록 신청이 워낙 밀린데다 행정처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번호표가 소화되지 않자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경우 등록까지 예년에는 2~3개월 소요됐지만 최근에는 5~6개월 정도 걸리고 투자자문사의 경우 짧으면 1년, 최대 1년반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한 운용사 대표는 “자산운용 자격증을 가진 직원 3명 이상, 준법감시인 1명, 감사 등이 필요해 준비를 다 해놓고 등록이 되기까지 기다리느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게 현실”이라며 “등록인가가 지나치게 지연되니 한시적으로 금감원이 인력을 대거 재배치해서라도 적체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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