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장애인 단체가 ‘장애인 권리예산을 보장하라’며 벌인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시민을 볼모로 삼은 불법 시위’로 규정하며, 연일 공세를 쏟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 20년이 넘었지만, 정치권의 무응답에 장애인 단체는 ‘나쁜 장애인’을 자처하고 나섰고, 비장애인은 출근길 지하철 연착에 불만이 커져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 배재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인수위 답변 촉구를 위한 결의식’에서 장애인 이동권 및 예산 확보를 위한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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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4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릴레이 삭발투쟁을 진행했다. 이날 삭발에 나선 배재현 전장연 활동가는 철제 사다리를 목에 걸고 쇠사슬로 묶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난 21년간 오이도역 등에서 장애인용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사망한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위해 싸워온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긴 싸움이 될지 모르지만, 힘을 보태야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현장에 매일 나온다”며 “이 삭발은 사람답게 제대로 살고 싶은 외침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예산 확충을 요구하기 위해서 지난 연말부터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26차례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시위 현장 방문 이후 지하철 출근길 시위는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까지 인수위에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위한 답변을 촉구하며 삭발투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전장연은 이날 이준석 대표의 ‘갈라치기’ 정치를 비판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탈시설이란 의제를 제기한 것은 전장연이 아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라며 “입장의 차이가 다른 의제를 마치 장애인단체 간 대립으로 프레임을 씌우려 했는데 반드시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일 오전 국회에서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단체인 ‘전국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 부모회’와 간담회를 열고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찬성해온 전장연을 지목, “일부 단체의 생각이 장애인 가족을 대표하는 것처럼 되는 작금의 현실에 우려가 있다”며 “지역 사회에서 복지서비스가 강화되기 이전에 선택이 아닌 강요로 시행되는 탈시설 정책은 인권 유린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종성 의원 주최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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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따라 교통약자의 이동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점은 명확하게 갈렸다. 국토교통부가 작년 5월 펴낸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7.8%에 불과하며, 보급 목표치인 42%에 한참 못 미쳐 장애인 등 이동권 문제는 갈 길이 멀다.
최근 이 대표의 발언이 장애인 ‘차별’, ‘혐오’ 논란으로 이어지며, 역설적으로 21년간 이어져 온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주목을 받았다. 시각장애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8일 전장연 25차 시위에 안내견 조이와 함께 참석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무릎을 꿇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전장연과 간담회에서 “장애인분들이 불편한 몸으로 시위하게 된 건 모두 저희 정치인들이 태만했기 때문”이라고 대신 사과했다. 인권위는 지난 1일 3호선 경복궁역에서 전장연과 만나 “이 대표의 발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혐오나 차별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싼 갈등은 지속할 전망이다. 오는 7일 MBC 100분 토론에서 이 대표와 전장연의 만남이 성사될 예정이었지만, 장애인 이동권 토론은 무산됐다. 이 대표 측에서 토론 방식과 일정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①1:1 토론 ②사회자는 김어준 ③일정은 공천 절차로 바쁘니 최소 4월 7일 이후 등 토론에 앞서 세 가지 요구 사안이 있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제가 토론을 왜 회피하느냐”며 “나중에는 ②도 방송사 마음대로 하라고 했는데 ①도 못 맞춰 준 게 MBC”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