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코로나19 확산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국내 외국계 IT 회사 직원인 A(34)씨는 PC에 키보드나 마우스 움직임을 추적해 자리 비움을 확인하는 이석체크가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노동자가 일정 시간 키보드나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고 ‘딴짓’을 한다고 판단해 업무성과에 반영하겠다고 나서면서다. A씨는 “인간은 기계가 아닌데 일분일초를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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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이처럼 디지털을 통한 노동 감시가 확대하는 가운데 관련 규율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은 9일 온라인 줌을 통해 주최한 ‘신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노동 감시에 대한 대응 국제세미나’에서 이러한 논의를 진행했다.
노동 현장에서의 디지털 감시기술 도입은 계속해서 증가 추세에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업장 내에서 CC(폐쇄회로)TV와 인터넷 모니터링 시스템, 위치 추적, 생체인식 시스템 등 다양한 노동감시가 이뤄졌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집에서 쓰는 PC에도 원격상태에서 직원의 근무태도를 감시하고 분석하는 이른바 ‘보스웨어’를 적용해 근무 여부나 집중도를 확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지난 8월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0%에 가까운 수가 디지털 감시기술의 도입으로 ‘노동통제 강화’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이날 세미나에서 “기술 발전에 따라 노동감시 양상도 달라지고 있는데 최근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모든 종류의 소통과 거래는 데이터가 된다”며 “플랫폼 그 자체로 감시 시스템이 되는데 해당 알고리즘은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고지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 노동 감시에 대한 관련 법 규정이 미비한 점도 언급됐다. 오 대표는 “개인정보보호법은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고, 근로자참여법은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미적용이며, 처벌규정이 없어 실효성면에서 미흡하다”며 “근로기준법은 사업장 내 감시 설비 도입과 관련한 조항이 없고, 감독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현행법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노동자 감시설비 설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노동자와 합의에 따라 최소한으로 운영토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강은미 의원안)이 발의돼 있다.
과도한 노동 감시로 인한 피해 호소는 산업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 도입은 사측의 일방적인 감시로 이어지며, 노사관계 권력에 있어서 비대칭성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배달노동자 등 작업 과정이 플랫폼에 그대로 노출되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배달의 민족과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으로 동선이 공개될 뿐 아니라 배달 만족도에 대한 소비자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해당 평가가 좋지 못하거나 과도한 거절 시 배차가 제한되거나 지연 되기도해 AI 등급을 통한 통제와 감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배달 대행사 측에서 근태 감시에 나서 화장실을 갈 때에도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실시간 정보 수집을 통한 배달 가격 통제도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야스다 유키히로 일본 노동넷 공동대표는 이날 세미나에서 “일본에서도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와 원격 근무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근무 상태 파악이 문제가 됐다”며 “위험한 상황의 예측·검지를 실현하고 사고 방지하는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직장 내의 신뢰를 손상하거나 ‘갑질’로 악용하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아이다 폰세 데 카스티요 유럽노총 선임 연구원은 “전통적으로 인사관리나 채용에 활용하는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사용되는 노동자 모니터링은 각국의 국내법에 규제되고 있지만, 알고리즘에 의한 감시 등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며 “AI 법이 유럽연합에서 제정될 것인데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노사관계 차원에서도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