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날개 잃은' 아시아나, 어쩌다가 '앙숙' 품에 안기게 됐나

1988년 제2민항사로 탄생..30여년만에 역사 속으로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2009년 금융 위기부터 '휘청'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의 꿈..'캐시카우' 역할
기내식 대란·회계 쇼크·LCC 시장 진입 등에 '난기류'
  • 등록 2020-11-18 오후 3:58:01

    수정 2020-11-20 오후 3:45:01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새 비행기를 타시겠습니까?, 헌 비행기를 타시겠습니까?”

1990년대 말 아시아나항공의 광고였다. 새 비행기는 아시아나항공을, 헌 비행기는 대한항공을 의미했다. 아시아나항공보다 항공사업을 20여년 전 시작한 대한항공의 항공기들이 상대적으로 노후화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1996년 1월 31일 신문 전면광고로 실은 아시아나항공(사진=네이버 아카이브)
1997년 괌 추락사고, 1999년 런던 화물기 추락사고 등을 겪은 대한항공은 18개월 동안 신규 노선 취항과 증편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 기간에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노선 17개를 비롯해 전체 노선 34개 등을 배분받아 급성장했다. 특히 중국 노선은 후발주자인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을 제치고 ‘중국 최다 노선 취항 항공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다 상황은 역전됐다. 2013년 발생한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공항 착륙 사고 결과 해당 노선 ‘45일 운항정지’ 징계 수위를 놓고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봐주기”,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국토교통부에 더욱 강한 징계를 요구했다.

이처럼 30여년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항공 산업에서 ‘앙숙’이었다. 독점을 견제하고 항공 운임 인하, 서비스 질 개선, 공급 확대를 위해 탄생했던 제2민항사 아시아나항공은 어쩌다가 대한항공에 인수되기까지 이르렀을까.

아시아나항공 CI
19년 만에 복수항공사 시대 활짝

대한민국의 항공산업의 시작은 대한항공이었다. 1969년 당시 국영항공사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서 독점체제를 유지했다. 글로벌 운송의 핵심 자산으로서 항공산업의 가치가 커 ‘1국 1항공사’ 체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복수 항공’을 허용하는 정책에 한국도 영향을 받았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한국으로 오는 관광 수요가 늘어나는데 대한항공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독점에 따른 공급부족과 서비스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란 기대로 1988년 2월 제2 민항사 아시아나항공이 탄생했다. 같은 해 12월 보잉 737-400 항공기로 첫 국내선인 서울~부산, 서울~광주 노선에 취항하면서 대한항공이 19년 동안 독점했던 국내 노선이 본격 경쟁체제로 들어서게 됐다. 아시아나항공 탑승객이 취항 8개월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출범 1년 만에 서울~도쿄 국제선 운항도 시작해 1990년대 호황기를 맞아 빠르게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1991년 박삼구 당시 금호기업 사장의 아시아나항공 사장 취임과 함께 서울~미국 로스앤젤레스 노선까지 취항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2003년 ‘스타얼라이언스’에 13번째로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항공사로 발돋움했다.

‘캐시카우’ 그룹 핵심 계열사로 부상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자산의 60% 차지하는 든든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자리매김했다. 금호그룹은 2004년 그룹 명칭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바꿀 정도로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부상했다.

아시아나항공 위기의 시작은 그룹의 문어발식 사세 확장과 맞닿아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공격적이었다. 그룹의 규모를 키우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해 2006년 시공 능력 평가 1위 대우건설을 6조4255억원에 사들였다. 2008년에는 물류업계 1위 대한통운을 4조1040억원에 인수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한때 재계 서열 7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그러다 2009년 금융위기에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승자의 저주’가 시작됐다. 박삼구 회장은 결국 1조5000억원을 손해 보며 대우건설을 매각했다. 그룹 자체가 부실화돼서 박삼구 회장은 2009년 7월 경영권을 내려놓았다. 2010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는 채권단의 주도로 수행하는 구조조정작업인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자율협약을 맺었다. 그룹 경영 정상화를 위해 대한통운과 금호렌터카 등 알짜 계열사를 매각하고 박삼구 회장은 이듬해 11월 다시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금호는 ‘형제경영’이 전통인데 ‘형제의 난’까지 벌어졌다. 박삼구 회장이 무리한 기업 인수를 반대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과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것. 금호아시아나는 이를 계기로 2010년부터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등 항공·건설·운수 부문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등 석유·화학 부문을 맡는 분리 경영에 돌입했다.

2014년 5월 30일 아시아나항공 A380 1호기 도입 기념행사
기내식 대란→회계 쇼크→매각 불발 ‘첩첩산중’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 자율협약 졸업 이후 여객기 개조와 비수익 노선 정리, 4000개에 달하는 비영업 자산 매각 등으로 2016년 4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금호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자금 지원을 이어오면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삼구 회장은 경영복귀 후에 그룹 재건을 목표로 금호고속과 금호타이어 인수에 올인했다. 재계 백기사들의 도움을 받아 자금을 마련해 2015년 말 금호산업을 7228억원에 인수했다. 다음 타깃은 금호타이어였다. 컨소시엄 구성 등에도 나섰지만 무산돼 2017년 11월 그룹의 성장 동력과도 같았던 금호타이어 인수를 포기했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2018년 4월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로 매각됐다.

박삼구 회장이 그룹 재건에 힘을 쏟는 사이 그룹의 ‘소년소녀가장’ 격이었던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는 더욱 짙어졌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가운데)과 간부들이 2018년 7월 4일 오후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논란이 된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항공산업적 측면에서도 암울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항공사 간의 경쟁에서 고군분투했다. 대한항공과는 노선과 기재 규모 면에서, 저비용항공사(LCC)와는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며 중간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중단거리 노선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저렴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매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LCC가 공격적으로 중단거리 노선확장에 힘을 싣자 경쟁에서 휘청거렸다. 중장거리 노선 확대를 위해 2014년 ‘초대형 항공기’ A380을 6대 도입했는데 금융리스로 도입해 이자가 막대하다. 2018년 창립 30주년에는 장거리 전문 항공사로 탈바꿈하겠다고 2025년까지 총 30대의 A350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7월 벌어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은 결정타였다. 표면적으로는 기내식 공장 화재로 공급 차질이 빚어진 것이지만, 항공업계에서는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재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업체를 무리하게 변경한 게 발단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아시아나항공 경영실적 현황
재무구조도 흔들렸다. 2019년 3월 아시아나항공은 대기업집단 중에는 이례적으로 2018년 재무제표에 대해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한정’ 감사의견을 받았다. 당시 부채비율 600%가 훌쩍 넘고 실적 악화가 이어지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적 위기 또한 다시 불거지고 있어 ‘존속 가능성’에도 의문이 컸다. 환율·유가 등 대외변수, 항공업 경기, 아시아나항공의 영업 경쟁력 강화 여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산업은행(주채권은행)과의 양해각서 이행 결과 등이 불확실성의 근거로 제시됐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이 결정됐고, 박삼구 회장이 작년 3월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11월부터 추진된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항공업계 불황으로 결국 올해 9월 무산됐다. 인수 무산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다시 채권단 관리 체제 아래 놓였고, 3조원 가량의 정부 지원도 받았다.

1988년 설립 이후 국내 부동의 2위 대형항공사로 자리를 지켰던 아시아나항공은 30여년 만에 경쟁자였던 대한항공이 1조8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히면서 하나로 뭉쳐지게 된 것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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