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 무이자로 수백억 빌리는 재건축조합

정비사업 시공사가 내는 입찰보증금..수도권 수백억원 규모
건설사가 고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조합에 무이자로 빌려줘
조합에 단비같은 사업비지만, 여력없는 건설사는 허리 휘청
  • 등록 2023-12-28 오후 6:25:35

    수정 2023-12-28 오후 7:24:42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재건축 시공사 입찰보증금이 수백억 원 수준이라서 건설사 부담이 커지고 있다. 조합이 초기 사업비를 건설사 입찰보증금으로 충당하면서 건설사가 비싼 금리로 돈을 빌려 대가 없이 조합에 빌려주는 ‘상하 구조’도 이어지고 있어, 건설사들이 정비 사업을 꺼리게 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시공사를 선정하면서 요구하는 입찰 보증금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가구 수가 많은 곳일수록 공사비 총액이 커지고 여기에 비례해 입찰 보증금이 형성되는 구조다.

예컨대 현재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고 있는 서울 송파구 송파동 가락맨숀 재건축조합의 입찰 보증금은 현금 600억원이다. 이 조합은 현재 936가구 규모인 아파트를 1531가구까지 늘려 지을 계획이다. 2021년 용산구 한강맨션 재건축조합의 입찰보증금은 1000억원이었다.

건설사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입찰에서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사는 이 금액을 조합에 빌려주는 계약을 맺게 된다. 이때부터 입찰 보증금은 대여금으로 성격이 바뀐다. 조합은 정비사업 초기 사업에 드는 각종 비용을 대여금을 써서 충당한다.

건설사가 대여금을 회수하는 시점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조합에 사업비 대출이 나오는 시기로 수년이 걸린다는 게 건설사 측 설명이다.

시공능력 상위권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 보증금을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천차만별”이라며 “자금이 빠르게 도는 편인 서울과 수도권은 1~2년 정도이고 지방은 3~4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관건은 대여금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시공사가 조합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는 아예 받지 않아 건설사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건설사가 자기 자금이 아니라 차입을 통해서 입찰보증금을 댄 경우라면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반대로 조합은 건설사에서 빌린 자금의 여유분을 운용해 번외의 수익을 내기도 한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는 예금이나 CMA 통장과 같은 금융상품에 예치해두는 식이다.

입찰보증금 500억원 사업장을 예로 들면, 조합이 자금을 은행에 예금으로 두면 연간 최대 20억원의 이자 수익(금리 4%·12개월 단리 세전 기준·은행연합회 공시)을 얻을 수 있다. 이 금액은 건설사가 포기해야 하는 금액이지만 빌려 온 자금이라면 그 이상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금리가 고공 행진을 하는 상황에서는 건설사 부담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각종 비용 상승으로 조합이 요구하는 입찰보증금은 증가 압력을 받는 상황이다.

정비사업 절차에 밝은 대형로펌 변호사는 “건설사가 무상으로 조합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므로 배임으로 볼 수 있지만, 이로써 사업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려는 것이라면 문제 삼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입찰보증금이 커지면 미스 매칭이 발생해 정비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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