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 걱정하다 국민 곳간 바닥”…'소급 없는 손실보상' 뿔난 자영업자들

28일 청와대 앞 17개 단체 공동 기자회견 개최
자정까지 영업허용·민관정 협의체 구성 등 촉구
집합금지·제한보다 생존권과 방역 조화 방안 요구
“K-방역 성과 이면에 자영업자들 희생 뒷받침”
  • 등록 2021-01-28 오후 1:25:22

    수정 2021-01-28 오후 8:45:39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오늘도 우리들의 하루는 절망으로 시작합니다.”

벼랑 끝에 선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이 28일 “현장의 목소리를 단 한 번이라도 귀담아 달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띄웠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영업제한 조치가 길어지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서 다시 거리로 나왔다.

자영업자들은 오는 29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과 ‘5인 이상 모임금지’ 조치 연장 여부 발표를 앞두고 “최소한 자정까지만이라도 영업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손실보상 논의에 대해서는 ‘소급적용’을 비롯한 5가지 원칙도 제시했다.

중소상인시민단체 회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집한제한·손실보상 관련 요구사항 전달 합동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고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생존권·방역 조화…“자정까지 영업시간 확대”

식당·PC방·당구장·제과점·독서실·호프·스크린 골프·카페·코인노래방·공간대여 등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17개 중소상인시민단체 대표들은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자정 영업 허용과 영업손실 보상 소급적용, 민관정 협의체 구성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설주의보가 예고된 가운데 눈발이 날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생존권 사수를 위해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광범위하게 일괄적으로 9시까지 영업을 제한한 조치는 업종에 따라서는 사실상 ‘집합금지’에 해당한다며, 이를 완화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단체는 “광범위한 집합금지와 제한조치가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만큼, 전면적인 집합금지보다 중소상인의 생존권과 방역이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업종별 특성에 맞는 방역과 개인별 방역수칙을 강화하고 최소한 자정까지는 영업을 허용해달라”고 강조했다.

방역 초기부터 ‘고위험시설’로 낙인찍힌 실내체육업계는 울분을 쏟아냈다. 정인성 대한당구장협회 전무이사는 “정부는 그동안 방역대책을 시행하며 많은 노하우를 쌓았을 것이라 예상한다”며 “보다 과학적이고 통계적으로 접근해 업종별 거리두기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집합금지 기간에 매출은 제로였고, 오후 9시까지 완화된 지금 평균 매출은 20~30% 수준에 불과하다”며 “보통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영업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해 최소한 자정까지 영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9시까지 영업 제한이 오히려 방역에 허점을 드러낸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자정까지 영업시간 확대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6~9시 사이에 밀집 효과로 손님들이 한꺼번에 모여 코로나19 전파 위험이 더욱 커진다”고 강조했다.

중소상인시민단체 회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집한제한·손실보상 관련 요구사항 전달 합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소현 기자)
영업손실 보상 소급 적용 등 필수…5대 원칙 제시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의 이면에 자영업자들의 희생이 있었다며, 이에 대한 손실보상은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홍 전국PC카페대책연합회 대표는 “집합금지와 제한에 자영업자들은 손해를 봤지만, 보상안 없이 인내만을 요구하고, 앞으로 적용될 방역수칙만 강요해 자영업자들은 경제적으로 사망했다”며 “최소한 1년 동안 코로나가 지속됐으면 그 안에 우리가 안전하게 문을 열 방법을 찾아줬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단체는 당정이 추진 중인 영업손실 보상에 대해서 △작년분까지 소급 적용 △근로자 수와 상관없이 적용 △실제 손해만큼 실질 보상 △긴급대출 병행 △정부·임대인·금융권과 고통 분담 등 5대 원칙을 내세웠다.

정부가 4차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소급적용’으로 그간 손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석 한국코인노래방협회장은 “하루 4시간만 자면서 대리운전·택배 등을 하며 아무리 발버둥쳐도 매달 고정비에 늘어나는 빚의 속도는 줄일 수는 있어도 갚을 수 없었다”며 “코로나로 인한 집합금지는 작년 5월부터 시작됐고 그 고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소급적용을 하지 않겠다는 건 지금까지의 협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을 넘어 전체 자영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도 촉구했다. 2·3차 재난지원금은 연간 매출 4억원 미만 소상공인에게만 적용돼 실제로 혜택을 못 받는 자영업자가 대다수라는 게 단체 측 주장이다.

김종민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2·3차 재난지원금은 상시근로자 수 5인 이상의 자영업자는 받을 수 없었다”며 “오히려 임대료 부담이 크고 고용인원이 많을수록 피해가 더 큰데 이미 지급한 재난지원금으로 손실보상을 충분히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꼬집었다.

이성원 사무총장은 “소급 적용 없이 4차 재난지원금으로 보상하겠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여기 나온 자영업자 대다수가 지원대상이 아니다”라며 “평균 자영업자 실소득은 매출의 4~5% 수준으로 수익은 연간 2000만~3000만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손실보상 제도화와 관련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나라의 재무 여건을 우려해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 사무국장은 “죽어가는 자식에게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이라며 “코스피는 3000을 넘고 강남 아파트 가격은 2배 가까이 오르는데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무총장은 “나라의 곳간이 비어가는 것은 걱정하면서, 국민의 곳간은 비게 하는 관료가 세상에 어디 있나”며 “대기업 규제 완화 조치를 위해 총수들은 만나면서 직접 현장에 나와서 중소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나”며 힐난했다.

그러면서 단체는 “집합금지 업종별 조정이나 손실보상 방안 마련과 관련해 중소상인들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민관정 협의체를 구성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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