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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우위 별개로 외교적 노력 필요”
외교부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보고한 ‘호르무즈 해협 내 우리 선박 억류 관련 상황’ 보고자료를 통해 “환경오염 관련 이란 주장의 진위, 공해·영해 여부 논란, 우리 선박 승선 과정에서 국제법 준수 여부 등 사실 확인 및 대응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안은 만만치 않다.
먼저 이란은 미국 군함 등이 자국 영해에 들어올 가능성을 우려해 ‘해양법에 관한 국제 협약’(유엔해양법)에 서명만 하고 비준을 하지 않았다. 이 말은 유엔해양법 협약을 구속을 받기 위한 절차를 밟지 않다는 의미다. 유엔해양법에서는 분쟁해결 절차로 해양법협약 당사국들은 국제해양법재판소, 국제사법재판소, 중재재판소, 특별중재재판소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당사국들의 분쟁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란은 당사국이 아닌 만큼 이같은 분쟁해결 조치가 적용 가능한지조차 검토해야 하는 셈이다.
물론 협약 당사국이 아니더라도 외국 선박이 ‘고의적이고도 중대한 오염행위’를 하지 않는 한 영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무해 통항권’은 국제 규범으로 정착된 개념이라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이를 알고 있기에 이란 역시 해당 선박의 오염행위를 이유로 내세워 선박을 나포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케미 선사인 디엠쉽핑과 선박관리회사 타이쿤쉽핑 측은 “나포된 해역은 선박 통항이 많은 곳이며, 해양오염이 발생했다면 방제선이 출동해 방제작업을 진행하면서 사진을 찍는 등 조치가 이뤄져야 하지만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9700톤(t)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은 이중선체 구조(더블헐)로 돼 있어 기름이 샐 우려 역시 적다.
해양법 전문가인 성우린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이란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해에 대량 환경오염이 일어날 정도의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적다고 본다”면서도 “법적 우위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이란에서 불필요하다고 안가는 건 어불성설”
이란 측이 “이 사안(선박 나포)은 기술적인 문제로, 합법적인 경로를 밟아 처리될 것이다. (한국 측의) 외교적인 방문은 불필요하다”는 데도 한국 측이 서둘러 대표단을 꾸려 보낸 이유다.
외교부는 7일 늦은 밤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 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이란으로 파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측의 발표를 오지 말라는 ‘불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우리나라 선박과 선원들이 타국에 구속된 상황에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 7월에는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국제 해양법 위반으로 나포한 사건이다. 당시 이란은 이 유조선에 대해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끄고 불법 해로로 운항해 이란 어선을 들이박고 도주했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국령 지브롤터가 15일 전 시리아로 석유 수출을 금지한 유럽연합(EU) 제재를 위반했다며 이란 국적 유조선을 나포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는 분석이 많았다.
우리나라 사건과 가장 비슷하게 여겨지는 2013년 8월 인도 선박 나포 사건 역시 결국 한 달에 걸친 대화 끝에 선박이 풀려났다.
이란은 당시 이라크 원유 14만t을 싣고 가던 인도 유조선을 나포했는데 그때에도 해양오염을 이유로 들었다. 유조선이 이라크로 향하며 이란 영해를 지날 때 기름 섞인 선박평형수(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내에 넣거나 빼는 물)를 쏟아내 해양오염을 일으켰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이란과 우호적 관계였던 인도가 당시 핵무기 개발을 하던 이란의 석유 수입을 줄이고 이라크산 석유 수입을 늘린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성 변호사는 “해당 선사 및 화주는 운송이 지체되는 경우 수억원에 달하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적법하지 않는 나포가 일어났다면 선사로서는 이란 측에 손해배상도 요구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만큼 빠른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