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플레이션 시대, '김밥·자장면'이 제일 많이 올랐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집계, 김밥 1월 대비 10.8% ↑
칼국수(10.3%), 자장면(10.2%)도 높은 가격 상승률
지갑 얇아진 소비자 '도시락' 등 저렴한 메뉴 찾아
'초고가 외식'은 호황…"소득증가 어려워 부담 지속"
  • 등록 2022-12-08 오후 4:34:00

    수정 2022-12-08 오후 7:45:15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올 한 해 외식비가 급등한 가운데 김밥, 칼국수, 자장면 등 대표적 ‘서민 메뉴’의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점심가격 급등을 의미하는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현실화한 가운데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한 외식비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의 한 가게에 가격표가 수정된 김밥 가격이 붙어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김밥·칼국수·자장면 연초대비 10%이상 올라

8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올해 11월 전국 외식 주요 8개 메뉴(김밥·칼국수·자장면·삼계탕·삼겹살·김치찌개백반·비빔밥·냉면) 가격은 1월 대비 평균 8.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8개 메뉴의 2021년 연간 가격 상승률은 4.9%였는데, 1년 새 3.6%포인트나 뛴 것이다.

올 11월 기준 전국에서 가장 가격 상승률이 높았던 메뉴는 김밥으로 1월 대비 10.8% 올랐다. 같은 기간 칼국수(10.3%), 자장면(10.2%)도 두 자릿수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어 삼계탕(8.2%), 삼겹살(7.8%), 김치찌개백반(7.5%), 비빔밥(6.5%), 냉면(6.4%) 순이었다.

김밥의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지만 가격대가 가장 저렴한 품목이다보니 인상액은 281원으로 가장 적었다. 반면 가장 큰 금액이 오른 메뉴는 삼계탕으로 연간 1144원 뛰었다. 이어 삼겹살(974원), 칼국수(734원), 자장면(575원) 등이 외식비 인상을 체감케 했다.

올 하반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대 중후반대를 나타냈는데 서민들이 즐겨찾는 외식 메뉴 가격은 평균 물가 상승률보다 더 뛴 셈이다.

◇“유가·원자재 등 안오른 게 없다”


올해 먹거리 물가가 급등한 것은 연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제 식량 수급 상황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자장면, 칼국수 등에 필요한 밀(원맥) 가격이 급등했고 음식 조리에 필수인 식용유 가격마저 크게 뛰면서 자영업자들은 전방위적인 원재료값 상승을 맞았다.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뿐만 아니라 유가, 인건비 상승으로 도저히 가격을 올리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올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매출 증가를 기대했지만 가격을 찔끔 올려도 소비자들의 원성만 커지고 결국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따라 런치플레이션이 일반화하면서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식사 메뉴를 찾기 시작했다. 편의점과 도시락 전문 업체에서는 도시락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도시락 프랜차이즈 한솥에 따르면 지난 10월 점심 시간대(오전 11시~오후 3시)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16% 이상 증가하며 역대 10월 중 최고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대형마트가 한 마리에 7000원짜리 치킨을 내놓자 저렴한 치킨을 사기 위해 마트에 줄을 서는 ‘치킨 런’ 열풍이 이어지기도 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마트 치킨은 일종의 ‘공공의 적’ 취급을 받으며 여론의 철퇴를 맞았지만, 올해는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홈플러스 ‘당당치킨’ 열풍 이후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는 지난 2010년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나흘 만에 판매 중단했던 롯데마트 ‘통큰 치킨 사태’의 재현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아랑곳 없이 마트 치킨을 소비하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며 “고물가 시대 합리적인 가격에 치킨을 소비하고자 하는 고객들의 호응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초고가 외식메뉴는 폭발적 인기

합리적 소비자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초고가’ 외식 메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외식 시장에서도 ‘소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는 올해 1월 자신의 이름을 딴 프리미엄 버거 레스토랑을 열어 11월 기준 누적 방문자수 20만명을 기록했다. 가장 비싼 버거 가격은 14만원에 이르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신메뉴 고든램지 피자도 현재 연말 주말 시간대 예약이 모두 마감된 상태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3월 문을 연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서울’도 주말 시간대 예약이 빡빡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불황에 오히려 명품 소비가 늘어난 것처럼 고가 외식에 지불하는 사람은 늘 있다. 반면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저렴한 메뉴를 찾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며 “소비자 물가 상승이 다소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개인 소득이 대폭 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외식비 지출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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