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범죄자'…또다시 불거진 '심신미약 감형' 논란

서울역 묻지마 폭행에 이어 창녕 아동학대까지
잇단 사건에 불붙은 '조현병' 논쟁..대책은
전문가 "범죄의 원인은 아냐..꾸준한 치료 중요해"
  • 등록 2020-06-16 오전 11:01:09

    수정 2020-06-16 오후 3:27:40

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 행인을 폭행하고 달아났다가 검거된 피의자 이모(32)씨가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차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서울역에서 여성 행인을 폭행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 이른바 ‘서울역 묻지마 폭행사건’ 피의자 이모(32)씨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유는 여성혐오에 기인한 무차별적 범죄라기보다는 ‘조현병’에 따른 우발적 범죄라는 것이다.

이처럼 범죄 피의자들이 조현병을 앓았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해당 질환에 대한 혐오도 증가하고 있는데 과연 법원의 구속 기준은 무엇일까.

‘서울역 묻지마 폭행사건+창녕 9살 아동학대’=“조현병 때문에”

이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1시50분께 공항철도 서울역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 앞에서 처음 보는 30대 여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뒤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여성은 이씨의 폭행으로 눈가가 찢어지고 한쪽 광대뼈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토부 소속 철도경찰대는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지난 4일 재판부는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한차례 기각했다. 이어 철도경찰은 이씨가 서울역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위협하거나 폭행한 행위를 추가로 포착해 혐의를 보강한 뒤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으나 이마저도 지난 15일 기각됐다.

이에 대해 피해자 A씨는 “조현병을 오래 앓았다면 수많은 피해자가 생길 때까지 방치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참담한 기분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고 밝혔다.

창녕 아동학대 계부(모자 착용)가 15일 오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에는 경남 창녕에서 벌어진 9살 여아 학대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친모 A씨(27)와 의붓아버지 B씨(35)는 초등학생 딸 C양(9)을 지속적으로 학대해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C양은 지난달 29일 오전 6시20분께 잠옷 차림으로 창녕의 한 도로를 뛰어가다가 한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C양은 눈에 멍이 들고 손톱 일부가 빠져 있는 상태였다.

C양의 진술에 따르면 부모는 글루건과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 프라이팬 등을 이용해 C양의 몸 일부를 지지는 학대를 해왔다. 또 물이 담긴 욕조에 가둬 숨을 못 쉬게 했으며 쇠막대기를 이용해 C양의 온몸을 때렸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쇠사슬로 목을 묶어 자물쇠로 잠근 뒤 테라스에 방치한 사실도 확인됐다.

친모 A씨와 의붓아버지 B씨는 일부 혐의를 인정하고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B씨는 지난 15일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는 법원에 판단에 구속됐다.

조현병 병력이 있는 친모 A씨는 지난 12일 응급입원했던 기관에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정밀 진단을 받고 있다. 이에 A씨의 처벌 수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사진=연합뉴스)
조현병→강력범죄..감형 사례 봤더니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사고, 감정, 지각, 행동 등 인격의 여러 측면에 조현병은 뇌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뇌질환, 뇌장애로 봐야 한다는 게 의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최근 들어 조현병 환자들이 저지른 각종 강력범죄 사건이 연이어 보도된 뒤로 대한민국 전역에 ‘조현병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실제 과거 여러 강력 범죄 사건에서 조현병을 이유로 감형이 이뤄지거나 감형을 요구한 사례가 많다.

2016년 발생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는 법원이 범인의 조현병을 심신미약으로 인정해 무기징역에서 징역 30년으로 감형했다.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성수 (사진=연합뉴스)
2017년에는 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한 뒤 잔인하게 훼손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주범인 10대 김양은 조현병과 아스퍼거증후군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감형을 요구했다.

2018년에 발생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역시 조현병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범행 당시 분별력이 있는 상태였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감형 없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4월엔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서 방화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안인득. 그동안 불이익을 당해 화가 났다면서 21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는 범행 전인 2011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약 5년간 68차례 조현병 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안익득은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

조현병도 병…공포가 아니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 가해자로 조현병 환자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대중은 공포에 휩싸였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현병 범죄자를 강력 처벌해달라”, “조현병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절차를 바꿔달라”는 등의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조현병 환자를 마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18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범죄 중 조현병 환자의 범죄 비율은 0.04%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 중 조현병 환자 비율이 약 1%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미미한 수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하지만 일각에서는 감정 제어가 쉽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경우 일반인들에 비해 살인이나 폭행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조현병 자체가 범죄의 원인은 아니다”라며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면 오히려 환자들이 치료를 기피하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즉 과장된 공포보다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통해 지속적인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현병은 보통 10대 후반∼20대에 발병한다.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학계는 유전적, 환경적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는 “조현병 환자가 치료를 진행 중에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본 적이 없다”라며 “일부 환자에서 약물치료가 통하지 않기도 한다.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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