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남편 조기영 시인 "당신을 문재인에게 보내며.. 건투를 비오"

  • 등록 2017-02-05 오후 3:36:00

    수정 2017-02-05 오후 3:36:00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 남편 조기영 시인
[이데일리 e뉴스 정시내 기자]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의 남편 조기영 시인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캠프에 합류한 아내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조기영 시인은 “당신을 문재인에게 보내며...”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이제 당신은 이기고 지는 것이 너무 선명하여 슬픈 세계로 가는구려. 꽃길만은 아닐 그 길에 당신의 건투를 비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고민정 전 아나운서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조기영 시인은 “우리와 문재인의 만남은 그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지. 마포의 한 식당에서. 세상의 평가 그대로 그는 소탈하고, 솔직하고, 친근해서 가식이나 권위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소. 그날 우리는 마포의 한 식당에서 낡고 부패한 권력 교체라는 목표에 각자의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것일 거라 생각했소”라고 말했다.

이어 “온갖 낡은 것들을 씻어내면서 정의가 살아 숨쉬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주는 새시대의 첫째가 당신처럼 나도 문재인이었으면 좋겠소”라며 “촛불로 거짓을 씻고, 촛불과 미소로 우리 스스로 오욕을 씻어낸 새시대의 첫째가, 새시대 첫 번째 대통령이, 그 누구보다 기득권의 골칫덩어리 문재인이었으면 좋겠소”라고 덧붙였다.

한편 앞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4일 공식 블로그에 “인재 영입 1호로 고민정 전 아나운서가 전격 합류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기영 시인 편지 전문.

당신을 문재인에게 보내며

아나운서 14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오. 당신이 KBS에 입사한 뒤 방송 출연으로 밤늦게야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뜬금없게도 운전면허 따는 거였소. 운전할 일 없으리란 생각으로 살다 당신의 늦은 귀가에 필요하겠다 싶어 잡기 시작했던 운전대... 연습은 큰집 트럭을 빌려 고향 길에 돌로 줄 그어놓고 시작했었지. 이유는 하나,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었다는 것... 몸이 회복 중이던 서른여섯 때였소. 다섯 번인가 도전 끝에 딴 운전면허. 잉크도 마르기 전 전주로 발령받은 당신을 위해 트럭을 몰고 서울로 올라와 당신 짐을 싣고 내려갔었지. 하행길엔 열 시간 넘는 운전으로 졸다 사고가 날 뻔 했었고... 문득 잠에서 깬 당신이 ‘오빠!’하며 운전대를 돌리는 순간 트럭이 중앙분리대를 거의 스치듯 지나갔지. 우린 겨우 목숨을 구했고... 그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 신혼 때는 새벽 방송 나가는 당신을 위해 먼저 차 안을 따뜻하게 데워주었었는데...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나는 그게 참 좋았소. 물론 지금도 그렇고... 그것은 가난했던 나를 보듬어준 데 대한 내 나름의 사랑 표시요, 투병 중인 나를 버리지 않았던 것에 대한 평범한 감사 인사였소.

근래 나는 당신이랑 비슷한 느낌을 가진 한 남자를 만났소. 아나운서가 된 뒤에도 사랑을 지킨 당신처럼 고시 합격 뒤에도 사랑을 지킨 사람, 이름 때문에 어렸을 때 별명이 문제아였다지. 저 밑 변방에서 올라와 요즘 한국의 중심을 흔들고 있는 문제아. 기득권의 골칫덩이... 그의 이름은 문재인... 인생사에 잘못이라곤 매매로 산 자기집 처마 끝이 공유지를 침범한 것뿐이어서 ‘처마 게이트’라는 유머를 낳은 사람. 권력의 충견들이 더 털 것이 없어 자기들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것만 같은 시대의 금욕주의자. 우리 앞의 그는 소탈해서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소. 단점이 있다면 발음이 좀 샌다는 거. 하여 전달력이 좀 떨어진다는 거. 그래서 마이크 잡고 준비된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일인 당신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소.

그는 골프를 치지 못한다 들었소. 아마 못 치는 게 아니라 안 치고 있는 걸 거요. 소외된 사람, 가진 것 없는 사람, 박해받는 사람들 변론을 하다 보니 차마 골프채를 잡지 못했을 거라는 게 내 생각... 골프는 기본적으로 기득권의 언어. 기득권에겐 그들만의 문법이 있소. 그들은 돈과, 돈으로 촘촘하게 쌓아올린 권력으로 사회를 지배하려 들지. 탈법, 위법, 편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떡값이라든가, 관행이라든가, 전례가 없다든가 하는 불후의 언어로 불멸의 특권을 누리며 한국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에게도 그들 문법이 통하지 않는 문제아가 하나 있으니 그가 바로 문재인... 어떤 형식으로든 돈의 향기에 취한 인간은 돈으로 유혹되지 않는 인간을 보면 한편으로는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하는 법... 그런 기득권의 미움, 시기, 질투, 열등감을 하나로 버무려 놓은 단어가 나는 친문 패권이라고 생각해. 저 기득권으로 편입을 번번이 거부하며 적당히 타협해 나눠먹는 구조를 거부하다보니 문재인은 기득권의 표적이 된 것일 테고... 기득권의 몰매를 맞으면서도 그저 아프다, 아프다 한마디로 꾸역꾸역 가시밭길을 헤치고 온 문재인을 사람들은 이제야 조금씩 인정해주는 듯 해. 지리멸렬한 당을 수습해 김대중, 노무현의 꿈이었던 전국 정당을 마침내 일구어냈고, 확장성이 부족하다 공격해댔는데 지지율이 지붕을 뚫고 올라가니 다음은 또 뭐라 공격해댈지 궁금하기도 하오.

공평무사한 사정 원칙, 그 원칙의 기초를 이루는 정의, 정의의 바탕을 이루는 청렴, 그리고 그 원칙에 입각한 인사... 그가 청와대 있을 때 일단을 내비친 그 원칙들이 패권이라면 그런 패권은 한국 사회 건강을 위해 널리 쓰여야 하는 게 아닐까. 정적들도 인정하는 문재인의 깨끗함으로 미루어 부패로 점철된 박근혜의 패권과 청렴이 기본인 문재인의 패권은 그 내용과 방향이 정반대일 텐데도 친문 패권이라 외치는 사람은 제 입으로 자신이 구시대 적폐요 청산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 거요. 살아온 날들로 살아갈 날들을 보는 법... 그러고 보니 친문 패권이란 말은 마치 쇼펜하우어가 명강의로 인기가 높던 헤겔에 대한 시기, 질투, 열등감으로 자신의 개 이름을 헤겔이라고 지어 놓고 ‘헤겔!’, ‘헤겔!’하고 불러대는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네... 순수한 이성, 일관된 삶의 원칙, 그에 기반한 따뜻한 실천이 삶 전체를 관통해 온 인생... 복잡한 듯 보이는 일련의 상황들을 정리해 기득권과 문재인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라 하면 나는 이렇게 쓰겠소. ‘기득권은 문재인이 두려운 거요’.

눈 밝은 이들은 알겠지만 그는 나처럼 오다리요. 다리가 휜 오다리... 최근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아이를 많이 업어주었다고 해서 오다리가 되진 않는다는 거요. 내 얘기가 아니라 전문가 얘기였소. 우리는 어렸을 적 많이 업혀 자라 오다리가 많다고 여겼는데 그것만은 아닌 듯 해. 시골 노인들의 구부러진 허리가 오랜 노동의 결과이듯 오다리는 가난에 따른 때 이른 노동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조심스런 결론이오. 굶주림은 기본이었을 테고... 어릴 적 피할 수 없었던 가난으로 피할 수 없었던 노동... 많이 휘었기에 더 강력했을 문재인의 어릴 적 기아와 노동을 생각하면 그의 가난이 살다 갔을, 우리의 가난도 지나갔을, 그의 오다리에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곤 해. 군사 독재 시절 대학에서 강제로 끌려나와 특전사로 내동댕이쳐졌을 그는 아마도 부대에서 오다리 때문에 조인트 꽤나 까였을 거요. 줄과 각이라는 헛것을 중시하는 군대에서 그의 휜 다리는 부러뜨려서라도 반듯하게 차려 놓아야 하는 실제였을 테니까. 다리가 신체적 결함으로 추락한 군대에서, 벌어진 다리가 싫었을 그는 그 틈을 실력으로나마 메우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땀들을 오기에 절여 흘려보냈을까. 아무 쓸모없는 지적 사항을 쏟아내는 아무런 쓸모없는 관심을 뚫고 특전사에서마저 최고 사병에게 주는 상들을 타냈다 하니 그는 홀로 사막에 던져져도 정원을 꾸미고 꽃들을 길러 태연하게 그곳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하고도 남을 사람이오.

그런 그도 내게는 어떤 의미에서 문제아. 멀쩡하게 직장 잘 다니는 사람을 홀연 빼내는 능력이 일품이니 하는 말이오. 처음 내가 캠프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말도 안 돼, 라고 외쳤소. 작년 12월, 당신은 제주행을 계획하고 있었지. 근래 답답함을 호소해오던 당신의 제주행 결심으로 고요했던 집에는 소용돌이가 일었고. 여행마저 꼭 가야 되냐며 일단 기피하는 나는 먼저 방어막을 쳤었지. 말로는 안 돼, 단호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소. 당신을 따라 행랑을 차리고, 이삿짐을 꾸리게 되리라는 것을. 이삼일 버티는 시늉을 했지. 당신의 진심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바로 집을 내놓았지... 인터넷으로 제주 집들을 뒤지고, 저 먼 섬나라로의 이사 비용을 알아보고, 제주행이 급속히 진행되는 듯 해 지인을 통해서도 살 만한 집들을 수소문해 보기도 했지... 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하던 제주총국으로의 비행은 KBS 본사에서 시행하려던 잡포스팅 제도로 급브레이크가 걸렸지. 잡포스팅... 어떻게 보면 순환 배치요, 어떻게 보면 직무 공모인 듯도 한 이 제도를 보며 우리는 먼저 이웃 방송국에서 진행중인, 권력에 고분고분하지 않던 직원들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극을 떠올렸지. 블랙리스트가 좀비처럼 되살아나 떠도는 시대에 명칭은 달라도 내용은 비슷하리란 불길한 예감이 우리를 휘감았고... 제주가 유배지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을 터.

그때였지... 캠프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다시 걸려온 게. 처음엔 누구나 농담으로 들었을 얘기.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뛴 나는 당신에게 얘기도 꺼내지 않았었지... 두 번째 전화를 받고 나서야 생각해보니 이것은 당신에게 제안한 일이지 내 일이 아니지 않았겠소. 며칠 고민 끝에 전화온 얘기를 해주었지... 돌아보면 절묘하기도 하지. 제주행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시기, 본인도 아닌 남편한테 전화로 걸어온 운명의 이 시간차 공격 결과를 생각해보면...

교착 상태에 빠진 제주행. 그리고 구체성을 띠며 걸려온 캠프의 전화. 나는 당신 눈빛이 흔들리는 걸 느꼈소. 제주행이 우리의 안락을 위한 현실 도피라면 캠프행은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단번에 끊어내버릴 수도 있는 현실 참여의 기회. 그게 문재인이라니 훨씬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들렸겠지. 당신은 문재인을 좋아했으니까... 2012년 대선 결과가 나온 날 아침, 당신은 눈물을 쏟으며 출근했었지. 방송국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5년을 참아왔는데 5년을 다시 견뎌야 한다니 막막했겠지... 논의 끝에 우린 캠프 관계자를 만나보기로 했지. 흔들리던 당신 눈빛으로 미루어 우리는 어쩌면 설득하러 간 게 아니라 설득 당하러 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소. 시위 나갔다 경찰에 붙잡혀 있던 당신 걱정에 밤새 경찰서 밖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일이 생각나네. 하루만에 풀려난 훈방이었지... 시끄럽고 불편하고 낯설기까지 한 전투를 각오해야 하는 현실 참여에 당신이 흔들린 걸 보면 당신에겐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던 학생 때의 열정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나 보오.

우리와 문재인의 만남은 그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지. 마포의 한 식당에서. 세상의 평가 그대로 그는 소탈하고, 솔직하고, 친근해서 가식이나 권위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소.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묻다가 살아온 얘기들을 하다가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얘기를 하다 블라인드 테스트가 화제에 올랐지. KBS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로 입사한 첫 기수인 당신에게 그는 이것저것 물었지. 출신 학교를 지우고 시험을 치르는 블라인드 테스트. 한마디로 학벌이 아니라 지원자의 삶을, 실력을 보자는 입사 시험.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된 블라인드 테스트는 문재인을 통해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블라인드 테스트가 공공기관 입사 시험 방식으로 공식화되면 우리는 학벌로부터 조금은 멀어지게 될까, 청춘들에게 이 제도가 조금은 숨 쉴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다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문재인표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우회로를 통해서 실현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소.

문재인의 책 <운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금방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

문재인이 노무현을 처음 만난 느낌에 대해 쓴 구절이오. 당신과 문재인이 비슷한 거 같다는 말은 사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이잖소. 그는 우리와 두 시간 가량의 대화를 끝내며 이렇지 말했지.

“우리랑 같은 과시구만.”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일 터.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 이걸로 마누라 뺏기는구나, 하였소.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소. 다만 이제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하겠다, 싶었지.

유신의 유물 같기도 한 블랙리스트가 유령처럼 떠도는 시대. 그런 시대에는 개인이든, 가정이든, 회사든, 사회든 안팎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답답한 공기가 주위를 맴돌곤 하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더 맑은 공기, 더 온전한 자유, 더 공정한 기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안에서도 다치고 밖에서도 다칠 바에야, 생각이 안에서도 밖에서도 죽을 바에야, 지옥으로 향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결국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되는 법. 당신도 그런 거겠지... 역사가 대의와 사람과 심장의 동시간적 접속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날 우리는 마포의 한 식당에서 낡고 부패한 권력 교체라는 목표에 각자의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것일 거라 생각했소.

군사독재 시절 우리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서늘한 문구로 현실을 알아가곤 했었지. 아무도 웃지 못했소... 세월이 흘러 그 무섭고도 슬픈 문구로부터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들은 촛불과 미소로 권력이 참담하게 쓰러뜨린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고 있소. 아마도 세계는 최루탄 하나 터지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보도블록 하나 깨지 않고,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 이룬 혁명이 여기 한국에 있다고 소개하겠지. 촛불 혁명으로 명명될 역사적인 순간들을 그려 내며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소.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을 털어 쓰고, 목욕을 한 사람은 옷을 털어 입는다 했듯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며 우리는 우리를 대표할 사람도 새로 선출하겠지... 온갖 낡은 것들을 씻어내면서 정의가 살아 숨쉬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주는 새시대의 첫째가 당신처럼 나도 문재인이었으면 좋겠소. 촛불로 거짓을 씻고, 촛불과 미소로 우리 스스로 오욕을 씻어낸 새시대의 첫째가, 새시대 첫번째 대통령이, 그 누구보다 기득권의 골칫덩어리 문재인이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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