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민 기자] 51일 만에 대우조선해양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조합 파업이 극적으로 종료됐지만 휴유증이 여전하다. 하청업체 노사(勞使)로 시작한 파업은 장기화하면서 원·하청 노노(勞勞) 갈등으로까지 번졌고 선박 작업 중단으로 협력업체 도산과 지역상권 피해라는 막대한 손실을 끼치면서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번 파업 기간 발생한 8000억원(대우조선해양측 추산)이 넘는 손실 책임 소재를 놓고 대우조선해양과 노조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하다.
|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협력사 대표들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 세 번째부터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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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업은 공권력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노사 양측이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특히 노조는 조선소의 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생산시설로 꼽는 도크(Dock·선박 건조장)를 무단으로 점검했고 이로 인해 대우조선해양은 선박을 물에 띄우는 진수 작업이 막히면서 사실상 선박 건조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노조의 도크 점검으로 진수가 중단된 경우는 1973년 회사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동시에 4척을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1도크의 진수 작업이 막히면서 피해도 막대했다. 대우조선은 지난달 2일부터 이달 22일까지 51일간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으로 매출 손실 6468억원과 고정비 지출 1426억원, 지체보상금 271억원 등 총 8165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추산했다. 여기에 선박 인도 지연에 따른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도 하락, 추후 산업은행 등의 유동성 지원 축소 우려 등은 미처 환산하지 못한 피해액이다.
손해를 본 것은 원·하청 근로자도 마찬가지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대우조선해양 비상경영을 선포했고 작업 차질에 따른 초과근무 및 특근 축소, 야간작업 중단 등 근무시간 조정에 따른 급여 삭감으로 이어졌다. 원청 노조(대우조선지회) 야근 근로자들은 부분휴업에 들어가면서 최근 3개월 평균임금의 70%만 받는 손해를 입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중 7곳은 파업 장기화로 결국 문을 닫으면서 이들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
대우조선은 하청업체 노조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의 기조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하청지회 집행부 일부는 업무방해 혐의로 이미 고소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진의 업무상 배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손배소 제기가 불가피한데다 불법 파업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으면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어 노조에 배상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 측은 ‘시설 파괴나 폭력 행사는 없었다’며 손해배상소송은 과하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어 언제든 다시 갈등이 터질 수 있다.
특히 파업이 일단락하면서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은 특근에 여름휴가까지 반납하며 그동안 지연됐던 공정 작업에 나섰지만 선박 납기일을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선업계는 최근 모처럼 불어온 수주 호황기를 맞아 열심히 실적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이번 파업으로 수 천억원의 손실을 본 대우조선해양만 여전히 ‘적자의 늪’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적자가 계속되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인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유동성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파업이 애초에 정부가 근본적인 원인 해결에 나섰어야 한다는 것을 방증한 사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조선사 협력사의 임금이 비슷한 상황에서 파업이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 전체로 번지지 않고 왜 대우조선해양에만 국한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일명 ‘주인없는 기업’으로서 산업은행 그늘에 있어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약한 대우조선해양을 타킷으로 해 노조가 파업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방향을 확실히 잡고 제 주인을 찾아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조선업계가 직면한 인력 효율화 등의 과제를 풀기 위해 기존 3강 체제에서 2강으로 압축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대우조선해양은 업계 2위로 덩치가 커 통매각에 어려움이 따른다면 분할지분매각도 묘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방산과 LNG(액화천연가스)선, 상선 부문을 따로 떼어내 파는 방안이다. 특히 군함 잠수함 등을 만드는 방산사업은 국가안보와도 직결돼 있는 만큼 정부가 지분을 갖거나 국내 방산업체에 매각하고 선박 부문은 국내에서 인수 희망자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