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이른바 ‘제2의 마셜 플랜’이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이 본격화할 기미를 보이자 국내 기업들도 이에 대응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재건 사업 규모가 9000억달러(115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재건 사업 관련 기업들로선 놓쳐선 안 될 기회여서다. 재건 과정에선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건설기계·원전 등 다수 업계의 수혜가 예상된다.
| 바실리 쉬쿠라코프(왼쪽 첫번째)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제1차관 등 정부기관 인사들이 지난 13일 HD현대건설기계 울산 캠퍼스를 방문해 재건 사업에 필요한 건설장비들을 살피고 있다. (사진=HD현대건설기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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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업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오는 21~22일 영국 런던에서 전후 재건 사업을 논의하는 2차 회의를 개최한다. 지난해 10월 독일에서 1차 회의가 열린 이후 8개월 만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러시아군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과 철도·도로·군사시설 등을 복구하는 재건 사업 정보를 공개한 뒤 각 국가·기업들과 사업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 1년여간의 전쟁으로 국가 인프라 시설이 심각하게 망가진 우크라이나는 이번 재건 사업으로 단순한 복구가 아닌, 국가의 미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현대적인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서유럽 국가들의 부흥을 위해 지원한 ‘마셜 플랜’과 같은 수준의 재건 사업이 진행되리라는 게 국제사회 전망이다.
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각국 정부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유럽투자은행(EI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은 원조와 차관, 투자 등의 형태로 재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2월 JP모건 투자 행사에서 “우크라이나에 투자하고 수익을 얻기를 바란다”며 투자 유치에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를 논의하기 위해 폴란드를 찾아 올렉산드라 아자르키나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차관과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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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이 같은 움직임에 국내 기업들도 재건 사업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전쟁 잔해를 치우는 작업엔 굴착기·불도저 등이 필수적인 만큼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HD현대사이트솔루션·
두산밥캣(241560) 등은 다양한 건설기계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데다 유럽 현지에 법인을 운영 중이어서 사업 참여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은 이미 재건 사업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모양새다.
HD현대건설기계(267270)는 지난 13일 자사 울산 캠퍼스를 방문한 바실리 슈크라코브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1차관 등과 재건 사업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HD현대건설기계 측은 이 자리에서 건설기계 공급 사업을 포함해 협력 가능한 재건 사업의 정보 교환과 추진을 협의하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그램별 투자 예상액 (표=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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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건설 기업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력 공급을 위해 원전 2기 건설을 공식화하면서다. 원전 기기 제조역량을 갖춘
두산에너빌리티(034020) 등은 원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현대건설(000720)은 지난 4월 미국 홀텍 인터내셔널과 함께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재건을 목적으로 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협력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주로 분포됐던 풍력 발전단지 중 약 80%가 우크라이나 통제를 벗어나면서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도 국내 기업 참여가 활발할 전망이다. 로스티슬라프 슈르마 대통령실 차장은 지난달 방한해 “신규 원전 2기 설립과 수소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에너지 사업 프로젝트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를 검토하는 기업들로선 이번 사업을 경제적 이익을 얻는 기회 외에도 우크라이나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어 앞으로 유럽연합(EU) 내 거점과 파트너를 확보할 기회로 보고 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의 특수성과 불확실성 등은 사업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 경기 둔화 등 어려움에 직면하자 이를 타개하고자 자국 기업의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라며 “기업들로선 재건 사업 참여를 위한 기회를 모색하면서도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