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이 곧 무기인 세상…미 vs 러·사우디 '에너지 전쟁'

우크라 사태 최대 충격, 에너지 패권 전쟁
바이든 비축유 결단에도…시장은 "역부족"
러, 노골적 ''무기화''…사우디, 미국과 불편
미·영 증산 요청에도 꿈쩍도 않는 OPEC+
치킨게임 탓에 에너지값↑…서민들 직격탄
  • 등록 2022-04-01 오전 9:42:22

    수정 2022-04-01 오전 9:42:22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기름이 곧 무기인 세상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에너지를 볼모로 한 패권 전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세계 1위 산유국 미국이 ‘역대급’ 전략비축유를 풀며 유가 안정에 나섰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돕기는커녕 꿈쩍도 않고 있다.

특히 전쟁 자금을 위해 에너지를 팔아야 하는 러시아와 공급 부족 탓에 인플레이션 폭등을 겪는 서방 국가간 갈등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복잡다단한 경제안보 흐름 속에 생활필수품인 기름을 비싸게 사야 하는 서민들만 결국 직격탄을 맞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제공)


바이든, 비축유 결단 내렸지만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향후 6개월간 역대 최대 규모인 하루 100만배럴의 비축유를 추가로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잇단 지정학 악재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초고유가가 지속하자, 또 결단을 내린 것이다. 미국의 비축유 방출은 최근 6개월 사이 세 번째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백악관은 “푸틴이 전쟁을 하면서 시장에 공급되는 원유가 줄었다”며 “생산이 감소면서 유가가 오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시추용 공공부지를 임대했음에도 원유를 생산하지 않는 땅에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의회에 요청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생산 허가를 받고도 (생산을) 시작하지 않은 유전만 9000개”라고 지적했다. 높은 유가를 잡기 위해 사실상 총력전을 펼치는 것이다.

지금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가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CNN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물가 급등이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우크라이나 침공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걱정하고 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실제 그의 지지율은 지난 18~22일 NBC 여론조사, 지난 21~22일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각각 40%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잠시 반등했다가, 곧바로 취임 이후 최저치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물가 폭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친정인 민주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고전할 게 자명하다.

‘에너지 안정’ 미국 혼자 못 해

문제는 미국이 세계 1위 산유국임에도 ‘나홀로’ 정책으로는 유가를 잡기 어렵다는데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영국, 캐나다가 러시아 원유 수입을 중단하면서 하루 약 300만배럴의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며 “미국의 비축유 방출로 메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하루 100만배럴 방출이 ‘최후의 카드’ 격이지만, 원유시장의 패닉을 잠재우는데 턱없이 모자란 것이다.

스티븐 이네스 SPI자산운용 파트너는 “과거 사례를 보면 전략비축유 방출은 일시적인 조치”라며 “부러진 다리에 반창고를 붙인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세계 2위, 3위 산유국인 사우디와 러시아는 오히려 미국에 각을 세우는 기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로 이뤄진 ‘OPEC 플러스’(OPEC+)는 이날 석유장관 회의를 통해 “오는 5월부터 하루 43만2000배럴 증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기존 40만배럴에서 겨우 3만2000배럴 추가로 늘린 것이다. 미국, 영국 등은 그동안 원유 공급의 실질적인 키를 쥔 OPEC+를 향해 끈질기게 대규모 증산을 요구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날 결정은 사실상 서방 진영을 향한 거절의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사우디는 러시아 못지않게 미국과 불편한 관계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사우디 왕실을 비판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을 두고, 그 배후로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한 이후부터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빈 살만 왕세자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거절 당했다는 보도(블룸버그)까지 나왔다.

에미레이츠 NBD의 에드워드 벨 수석디렉터는 “(OPEC+가 움직이지 않으면) 올해 남은 기간 상당한 규모의 공급 충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푸틴 노골적인 ‘에너지 무기화’

심지어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 무기화를 더 노골화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은 4월 1일부터 가스 구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비우호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은행에 가스 대금 결제를 위한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가스 공급 계약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령에는 비우호국들의 모든 가스 구매업체들과의 계약에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 프랑스 등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유럽 주요국들이 흔들리는 건 곧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단일대오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서방 국가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유로화 혹은 달러화로 계속 결제할 것”이라고 했다. 양국간 가스 공급 계약을 확인한 이후 푸틴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가스가 필요하다는 약점이 바뀌는 건 아니다.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50% 이상이다. 러시아가 가스를 보내지 않으면 경제 붕괴를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월가의 한 고위인사는 “(아직 경제가 견조한) 미국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유럽은 정말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NYT는 “미국 등 서방은 잇단 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재정을 압박하려 하지만 동시에 자국의 물가 폭등에 취약하다”며 “러시아는 전쟁 자금을 대기 위해 에너지 판매 대금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두 진영간 치킨게임 양상의 핵심으로 에너지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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