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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만난 김성원 대림성모병원장은 최근 내놓은 소설 ‘시시포스의 후손들’을 쓴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소설은 유전성 유방암 환자가 암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뤘다. 유전성 유방암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전체 유방암의 5~7%를 차지한다. 이 유전자가 있으면 유방암 위험은 65~70%, 난소암 위험은 10~25% 늘어난다. 유전성 유방암 가족의 남성은 전립선암 위험이 커진다. 김 원장은 국내 유전성 유방암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국내 40개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공동연구인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책 제목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으로, 저승의 신을 속인 벌로 평생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그는 “유전성 유방암은 환자와 가족들은 시시포스처럼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젠가는 유방암이 걸릴 것이라는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며 “6개월마다 암이 생겼는지 검사하는 것 자체가 이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시시포스가 바위를 올리는 산은 환자들이 겪는 과정을 뜻한다. 김 원장은 “실제로 환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호르몬치료 등의 수술과정을 ‘산을 넘고 내려와 또 하나의 산을 오르는 길’로 얘기한다”며 “또 한쪽 유방암을 치료했더라도 다른 쪽 유방, 난소에서 언제든 암이 생길 수 있어 지속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진흙탕에 처박힌 심정’ ‘차라리 후련하다’ 등 유전성 유방암 가족이 아니라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표현이 많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2005년부터 홈페이지와 환우회에서 환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환자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카카오톡에 채널을 만들어 환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한다. 김 원장에게 진료를 받지 않는 환자라도 유방암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라도 직접 물어볼 수 있다. 김 원장은 “별도의 운영자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모든 답은 직접 한다”고 말했다. 부담스럽거나 번거롭지 않냐는 질문에 “환자의 절박함을 알기에 기꺼이 직접 하고 있다”며 “오히려 나를 찾는다는 게 즐거운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가 유방암 특화병원으로 체질개선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소병원이 살아남는 길은 전문화뿐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반경 2㎞ 이내에 대학병원이 3개가 있다”며 “이들과 모든 진료과에서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면 제대로 잇고 싶다”며 “대학병원 수준의 진료를 대학병원보다 더 편안하게 제공한다면 결국 환자들이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